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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Apr 26. 2022

불충한 하루

4월의 막바지를 향해 가던 오늘은 썩 유쾌하지 않은 날이었다. 잔뜩 흐린 하늘과, 뜻대로 되지 않던 일, 그리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밀린 강의들까지. 화사한 봄볕 아래 들떠있던 마음이 빗물 젖은 꽃잎 되어 차분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어찌보면 별일도 아니고, 오늘의 좋았던 일만을 꼽으라면 얼마든지 읊어댈 수도 있었다. 사실 하루의 시작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무탈해 보였던 나날임에도 알 수 없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니 나의 마음은 우습기 짝이 없다.     



물론 이런 하루가 처음은 아니다. 기쁨과 우울이 파동되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파장도, 진폭도 알지 못한 채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은 꽤나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감정을 감내하지 말자고. 곧 사그라들 이 하루를, 삶의 마지막 날인 듯 소중히 여기자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불충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오늘도 내일도 모두 의미를 상실한 채, 나는 다시 침전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실은, 부표를 잃고 멀리 떠내려온 것은 아닌가 하고 문득 불안했던 것 같다. 생각을 잃고, 마음을 놓은 채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며 무심결에 소중한 것들에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도 않는 말들로 비웃음을 사고 있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뭐 이런 말들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그렇듯 무미건조한 위로는 휘발되고, 이 감정의 자국만이 깊고 진하게 번져갈 뿐이다.


      

눈을 감고 잠시 후 맞이할 내일을 상상해본다. 또다시 나의 말은 우습게 들릴 것이며, 같은 시간 속에서 비슷한 일과와 감정 반복 것이다. 약간의 변주로 기념비적인 하루를 보내고자 하겠지만 결국 내일도 같은 숫자로서 흘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불충한 하루가 될 내일. 그러나 분명 하루는 하루로서 충분할 수 없다. 물 한 방울만으로 나무 한 그루를 키워낼 수 없듯, 얄팍한 생각만으로 마음을 다 써 내려갈 수 없듯.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것 뿐이다. 감정의 파동에 발맞춰가며. 희미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가며. 길게 늘어진 생각의 끈을 붙잡아가며.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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