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내려와 조용한 명절을 보냈다. 길지 않은 연휴 탓에 시골로 떠나지 않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혹시 먼 길을 떠날지 몰라 바리바리 옷을 준비해 왔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짐을 방 한편에 둔 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본래 명절은 ‘멀리 떠난다’는 말과 같았다. 고속도로에서 꼼짝없이 몇 시간을 허비하고, 지친 몸으로 할머니 댁에 가서 몸과 마음을 살 찌운 뒤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에 지쳐 다들 멀리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부모님도, 나도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함께 살 때는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식사도, 여행도, 명절도, 집안 행사도 매 순간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진 지금은 함께 모이는 것조차 행사가 되어버렸다. 한 집 안에 뿌리를 내리던 날들은 지난 추억이 되었고, 매일 반복되던 저녁 식사는 달에 몇 번 있는 특별한 일이 되었다. 비로소 명절은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닌, 서로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엄마는 쭈그려 앉아 전을 부치지 않는다. 제사상에 올릴 갖가지 명절 음식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집 떠난 자식들을 기다릴 뿐이다. 어렸을 때는 이런 명절은 상상하지 못했다. 당연하던 것들이 더는 당연해지지 않는 것. 나와 우리의 시간이 또 한 번 훌쩍 흘러갔음을 의미한다. 평소보다 조용한 명절을 보내며 몸도 마음도 편했지만 새삼 슬퍼진 이유다.
우리의 명절은 훗날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영원할 수 없는 우리는 어떤 내일을 맞이할까. 나의 삶이 먼 곳에서 뿌리내리는 동안 늘 함께였던 가족의 터전은 어떻게 변해갈까.
홀로 서도 끝내 혼자일 수 없음을 알기에
그저 시간을 붙들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