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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Apr 02. 2024

귀 빠진 날


태어났다는 이유로 감사한 적은 없었다. 다만 살아가고 있음에 다행일 뿐이다.

     

얼마 전 나의 생일이 있었다. 정신없던 날들 속에 감흥 없이 지나갈 뻔한 하루였다. 그러나 따뜻한 축하를 받았고, 뜻밖의 연락에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과연 이 예외적이고 특별한 생일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와 누군가에게 이 삶의 존재가치를 되짚어주는 것이 아닐까. 무탈히 살아남아서, 오래전 세상으로 나오던 처음을 기리며.      


그간 많은 순간을 겪어오며, 이유 없이 태어나 한평생을 삶의 목적을 찾아 헤매지는 않을까 두려웠었다.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 불행했다. 한참 더디던 삶의 속도가 한심하여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살기에 살아갈 뿐이다. 각자의 삶에 어떤 대단한 미션과 의의가 명령처럼 부여되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떤 것은 타고나기도 한다.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삶의 어떤 목표 따위들은 사건과 상태로 인해 의미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운명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결국 유한하지 않은 이 삶은, 오늘과 또 다른 오늘로 축복되어진다. 다만 무수히 많은 삶과 하루가 있기에, 우리는 딱 하루를 정해야만 했던 것 같다. 이왕이면 기념비적인 하루로.     


무탈히 또 다른 생일을 맞이하였다. 올 한 해도 당신들과 함께하여 기쁘다.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던 삶들이 만나 웃고, 떠들고, 추억을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누군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이렇게 살아갈 뿐이다. 거대한 우주의 어떤 법칙 따위 앞에서, 우리는 너무 작고 무기력한 존재들이기에. 그리고 그런 존재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덕분에 내 삶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 삶을 내려준 이에게도,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모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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