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시간이 있어? 난 애 등원시키고 집 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면 하원시간이던데...''
라고 묻는 친구에게
''청소는 해도 다시 어지러워지니깐 그냥 놔두고 애가 잠이 들면 모든 걸 stop 하고 책만 읽는 거지~''
라고 호기롭게 대답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도 내 일상이, 내 삶이, 내 인생이 전혀 바뀌지 않기에 뒤돌아서면 마음이 헛헛하더라고요.
책을 읽어도 엉망인 개수대는 여전히 엉망이고 엉망인 거실 바닥은 여전히 엉망이니깐요. 집안일을 할 시간을 유예시킬 뿐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찰나의 자유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에 아이가 잠이 깨면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보다는 아쉬움을 가득 실은 탄식을 허공에다 내뿜곤 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책을 붙잡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오랫동안 바깥'일'을 하며 노동의 대가로 월급도 받고 대우도 받으며 내 이름 석자를 당당하게 내밀고 다니던 그때의 자유, 열정, 성장 모두 아쉽지만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은 느낌에 드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쌓아 올린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의 가치를 증명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맨몸만 남은 사실을 이해도 인정할 수도 없었거든요. 그나마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몰입할 수 있으니깐 책만 붙잡고 있었죠.
나조차도 나를 규정짓던 직업이 색 바랜 이력서의 몇 줄로만 남은 순간부터 새롭게 규정된 나의 역할 중 하나인 집안'일' 집안일을 하며 내가 소박하게나마 이루어 내던 단조로운 집 풍경마저 작은 생명체에 의해 파도 앞 모래성같이 부질없이 무너지고 육아는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느낀 순간부터는 끊임없이 많은 것을 내려놓았었죠. 내어놓을수록 더 내어놓게 되는 순간들. 나의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인지 밑바닥을 찾아 나서는 여정 같았던 육아. 한 칸 한 칸 계단 내려가듯 하나씩 하나씩이었다면 좀 나았을까. 하지만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듯 순식간에 지하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순간들.
하지만 밑바닥까지 내려와 보니 알 것 같아요. 내려가는 시간들은 깊숙이 자리한 나의 내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려가는 순간순간에 나의 마음에 근육이 생기고 체력이 생기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요. 진짜 나의 모습이 덮인 채 진실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쌓여있을수록 그만큼 나를 드러내기까지 더 많이 힘들었던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리고 요즘. 여전히 책을 좋아... 아니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책만 보지는 않아요.
내가 서있는 자리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만 읽으니 정신만 분주해지더라고요. 책을 읽는 시간을 쪼개 나의 주변을 정리하고, 가족을 위해 갈무리를 하고, 대신 설거지하며 더 깊이 생각하고, 필사도 하고 나의 마음에 집중하여 글도 써보고
책을 읽는 시간은 많이 부족해졌지만 그래도 책을 덮은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지금이 더 좋아요.
무슨 일을 하든, 현재 내가 서있는 이 자리부터 행복할 것. 늘 마음에 새겨두려고요.
책은 언제나 나를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평생 함께할 소중한 벗이지만 결국에 나의 행복은 책 속이 아닌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책 속에서 찾은 길을 일상에 가지고 와 행동하고 실천함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