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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Sep 06. 2020

이 밤의 끝을 잡고

육아와 육아 사이의 시간


촉촉한 초가을의 밤.


늦은 오후부터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아슬아슬하더니 저녁이 되자 하늘은 속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려댔다.

기다렸다는 듯 창문으로 가서 가을비 느꼈다.

촉촉한 비 냄새는 내 피부를 통해 마음까지 적셨다.

방충망 사이에 낀 캐캐 묵은 먼지들마저 사랑하고 싶은 순간.

육아와 육아 사이의 시간을 조각조각내어 나에게 주는 순간들.  

찰나의 순간들은 시간의 틈을 사랑하게 만든다.


시간의 틈을 통해 내 마음 곳곳에 틈새도 채워진다.


육아에 의해 사라진 시간들이지만,

육아로 인해 소중함을 깨닫게 된 시간들.


한동안 구멍 난 마음에 물을 붓듯이 이 시간들을 빼곡히 채우곤 했다.(아직도) 내 마음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새로운 마음이 채워져서 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내 마음인지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마음에 갈증만 더 해지다가

계절이 바뀌고서야 이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이제는  시간들을 채우기보다 비워야 할 것 같다.

불안감도 비우고, 자책감도 비우고, 욕심도 비우고.

모두 모두 비우고서 공간이 생기면

사랑하는 마음들을 채우고 싶다.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는 마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아이들과의 시간을 사랑하는 마음.

남편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부모님들을 사랑하는  마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들을 가득가득 채우고 채워

나의 마음을 키우고 싶다.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기를

지나가는 일들에 의연할 수 있기

가끔씩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기

미운 마음은 어내고 용서하는 마음은 더 할 수 있기를

어떤 상황에서든 나 스스로를 존중하기를

그리고 나의 삶만큼이나 타인의 삶을 존중하기를...


오늘의 육아와 내일의 육아 사이의 이 시간.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소중한 이 밤의 끝을 잡고선

지친 내 마음은 달래고, 예쁜 내 마음은 보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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