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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 Nov 14. 2024

Ep.06_2 이것저것 맘이 시키는 대로

나를 조각하자

 기숙 학원에서, 나는 다음 학기에 할 알바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 있는 새로운 업무를 체험해 보고 싶었다. 어렴풋이 물리는 안 맞는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 동물에 꽤나 관심이 있었기에(그래서 에버랜드 사육사도 지원했었다) 이번엔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를 확인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직접 전화하는 노력(?)까지 기울였음에도 결과는 서류 탈락이었다. 어찌 보면 관련 경력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조금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제주도 호텔 주방 근무에 지원하게 된다.


 기숙학원에 들어가기 전 거대한 벽 같은 물리가 지겹다고 생각하던 중, 요리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요리는 무슨 장을 담그고 하는 게 아닌 이상 길어야 일주일이면 결과물을 볼 수 있었고, 물리와 다르게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간극이 좁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하고 재료나 조리 방식을 조금씩 바꾸었을 때, 결과물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조금씩 레시피를 조정하며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었고, 이렇게 맛을 조합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 보고 싶어서 요리 학원의 체험 수업을 등록했다. 수업 하나 신청하는데 무슨 절차가 그렇게 많은지… 사이트에서 바로 신청하는 게 아니라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신청을 넣었다. 그러고 나서 학원에 가서 들은 수업은, 유튜브를 보고 요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튜브가 나을 것 같았다. 어떻게 조리해서 어떤 효과를 이끌어 낸다, 어떤 맛끼리 조합해서 어떤 맛을 느끼게 하기를 유도했다 하는 설명은 전무했고, 주어진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관심은 남아 있었고, 기숙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이 다음 알바를 고민하는 나를 보고 제주도에 가 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던졌다. 왜인지 그 말이 뇌리에 팍 꽂힌 나는, 제주도에서 숙식을 제공해 주는 알바 자리를 찾아봤고, 요리에 관심이 있으니까 조리 관련 업종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호텔 주방 자리를 지원하였다.


 어찌어찌 지원서를 써서 넣었더니, 서류 전형에 합격하였고 비대면 면접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줌을 켜고 면접관님과 대면하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질문과 답변이 오갔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쩌다가 지원하게 되었냐는 질문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요리의 어떤 부분이 맘에 들었고, 현업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면접관님은 본인도 전기전자공학부를 나왔는데, 진로의 방향성을 틀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면접관님과의 공통분모 덕분인지, 요리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경력도 없는 나는 조리직에 합격하여 제주도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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