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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un 17. 2021

정신과에 처음 간 날 엄마는 초밥을 사왔다

엄마에게 미안해

한 달 반짜리 단기아르바이트 첫 날. 전날 새벽, 나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었다. 일을 잘 못 하면 어떡하지. 사람들 마주하는 게 무서운데. 안절부절못했다. 그날뿐일까. 나는 10여년을 우울과 불안에 휩싸여 지냈다. 상담도 꽤 긴 기간 받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무기력이 나를 잠식하고 나면 상담을 통해 배운 작은 규칙들조차 지킬 수가 없었다. 몇 달간 고민했다.  나의 무기력증은 나를 잠식하는 정도에 멈추지 않고 삶을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딴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고 나서 돈이 생기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가고 싶은 곳도 가서 행복해질 테니까 한 달 반만 더 버텨볼까. 하지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여기에 가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희미한 기대만 남았다. 나는 안다. 기대는 계획이 아니다. 병원에 가야겠다. 약을 먹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통장엔 2200원이 있었다. 친구가 안 갚아도 된다며 5만원을 빌려줬다.


아침이 되었다. 집 근처 가까운 정신과를 찾아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일 나가기 전에 얼른 나갔다 온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 두 정거장을 지나 5분 정도 걸었다. 기분이 묘했다. 사람들이 내가 정신과에 간다는 걸 알 턱이 없지만 괜히 쭈굴해졌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약을 숨겨 올 가방조차 메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집에서 나오고야 깨달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면담을 진행했다. 대답해놓고도 아차 싶은 질문들이 있었다. 어디 대학을 나왔는지. 연애는 해 봤는지. 알콜 중독이나 약물 오용 등이 있는지. 자살 시도가 있었는지. 알콜은 한때 중독이었고, 약물 의존증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자살 시도도 있었다고 말해버렸다. 말하지 말 걸 하다가 괜히 의사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말을 덧붙였다. 사실이다. 난 죽음을 간절히 바란 적은 없다. 기약 없이 어둡고 무의미하게 이어지는 삶이 멈췄으면 했을 뿐.


각종 검사지와 검사 후 의사는 자살 징후가 보이는 중증 우울장애를 진단했다. 나는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항상 최대한의 긴장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면역력도 바닥이랬다. 하여튼 모든 수치가 최악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안은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정말일까. 진단명을 듣는 그 순간 속에서 뭔가가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고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생각보다 비싼 초진비를 냈다. 친구가 돈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다니는 병원은 초진비가 만  얼마랬는데, 몇 배는 비쌌다. 기록이 무서워 비보험을 할까 하는 충동이 들었지만 영수증을 보니 내 통장 잔고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비용이었다. 1주일치 약을 받아왔다. 집에 오며 불안에 휩싸였다. 초조했다. 이제 나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약을 먹으면 약에만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부작용은 또 어쩌지. 약봉지를 입은 자켓 안주머니에 구겨 쑤셔넣었다. 아무도 못 보겠지.


집에 돌아왔다. 강아지만 있었다. 날 보고 낑낑댔다. 아직 어린 아이라 낑낑댈 때 꺼내주면 버릇이 나빠진다 하여 안아 들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강아지를 안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침대 속으로 숨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알바를 나가야 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한숨과 욕이 뒤섞이다 만 소리가 입에서 자꾸 새어나와 방바닥에 흘러내렸다. 헛구역질이 계속 났지만 뭐라도 먹긴 먹어야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된장국에 밥을 두 숟가락 말아 먹었다. 이거면 굶어죽진 않겠지. 받은 약을 먹었다. 쿠팡에서 의사가 먹으라고 한 비타민 D를 샀다. 병원에서 F코드가 뜨는 건 막상 까먹고 있었으면서. 저는 비급여 주사는 비싸서 못 맞아요, 하고 나왔던 내가 조금 웃겼다. 일을 나갔다.


일은 어찌저찌 마쳤다. 걱정한 것만큼 어렵진 않았다. 이렇게 5주를 반복하면 수중에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들어오겠지. 집에 와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도 나와 같은 단기알바를 다른 동네에서 한다. 언제 오냐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초밥을 샀다고 했다. 웬 초밥. 엄마는 속이 안 좋아 날것이 들어간 음식을 전혀 드시지 못하신다. 평생 본인 먹고 싶은 건 잡채 이상을 못 넘기는 분이 내가 워낙 밥을 안 먹으니 걱정되어 초밥을 사신 거다. 엄마 그거 사지 마요, 뭘 그런 걸 사요.. 라고 했는데 이미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곧 갈테니 저녁을 먹지 말고 기다리랬다. 미안해졌다.


엄마가 돌아오고, 초밥을 받았다. 잠깐 부친과 얘기를 하러  엄마를 기다리며 초밥을 방에서 먹었다. 맛있었다. 입은 맛있게 초밥을 씹고, 머리는 어떻게 얘길 해야 내가 정신과에 다녀왔단 얘기를 하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젓가락을 거꾸로 집고 초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은 초밥을 반쯤 먹었을  알았다.


엄마를 방으로 불렀다. 정신과에 다녀왔다고 했다. 평소에 무미건조했으니 담담하게 말할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났다. 점심에 먹은 약빨이 좋은가보네,하고 생각했다. 몇 달 만에 울어 보는 건지. 좀 지나니 콧물이 계속 나서 실소가 터졌다. 나는 친구와 간호사 출신인 몇의 말을 옮겼다. 취업이나 보험에 불이익이 없을 거라고. 특히 취업에는. 그리고 엄마 말대로 취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이런 증상도 호전되겠지만(분명 경제력이 완충을 해주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으로선 취업준비를 할 일말의 집중력마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변명과 설명과 호소가 뒤섞인 말을 조리있는 척 했다.


엄마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네가 잘 했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너무 약에 의존하지 말고 살 날이 오면 좋겠다고도 했다. 의아하고, 또 싱거웠다. 엄마는 내가 보험에 든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병원도 못 가게 했던 사람이다.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할 뿐. 하긴 나 같아도 걱정될 것이다. 발은 끌듯이 걷고, 하루에 한 끼나 먹을까말까한데다 해가 뜨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침대에 박혀 있는 자식이라니. 그런 아들이 오늘 고생했다고, 일을 하고 왔다고, 당신께서도 지쳤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 왔다. 몇 번 정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기대인지 기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침묵을 그런 식으로 좀 때웠다. 여하튼, 그렇게 됐다.


 내가 정신과에 처음 간 날, 엄마는 초밥을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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