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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y 23. 2023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 같은 건 없다

같은 건 내겐 없어서

작년 11월, 반 년을 고민했다. 좋아하는 무용단의 지방 공연에 찾아갔다. 덜덜 떨면서 무용단에서 연습하고 싶다고 했다. 허락을 받았다. 정말 꿈같았다. 그날 막차를 타러 시골 터미널까지 달려가던 밤길이 생생하다.


일을 했다. 주중에는 집 근처의 연습실에 가고, 주말에는 알바를 세 개를 뛰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올해 3월, 고시원을 얻어 서울에 올라갔다.

그리고 단 2주만에 쫒겨났다.  1년 반을 준비해서, 단 2주만에.


야외 공연을 한 날, 나는 스태프로 참여했다. 외국어를 할 줄 아니 그럭저럭 관객을 모았고, 유럽 어느 나라의 외교관이 나와 대화를 했다. 그는 그의 나라에서도 이 무용단의 공연이 보고 싶다고 했다. 말이 통한다고 급이 되는 건 아니라 pd에게 인계했다.


 뒷풀이 때 감독에게 '외교관하고는 얘기가 잘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냥 궁금했다. 그는 몹시 불쾌해했다. '춤을 추러 오지 않았냐. 이런 식이면 연습실 그만 나오라'고 했다. 연습 며칠 빠지기까지 하고, 춤을 출 생각은 있냐고 했다.


연습 며칠 빠진 거. 가자마자 텃세를 부리던 사람이 나를 을러대며 '눈빛이 맘에 안 든다' 라고 한 후 나를 때리려는 제스처까지 취했으며,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본가에 내려가 약을 처방받아온 시기였다. 생각같아선 갖다 받아 버리고 싶다, 라는 충동이 들었지만 나는 거기서 아무 지위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약을 늘려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감독에게 그런 얘기는 할 수 없었다.


3주차,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해외 투어 나가는데, 연산씨는 이제 연습실 그만 나오라고. ㅇㅇ씨와의 트러블(내 눈빛이 맘에 안든다던)도 별로 좋게 보이지 않으며 아까 얘기한 외교관에 대한 '언행'을 감독이 몹시 싫어했다고. 코로나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던 상태였다. 병원을 다녀오던 길, 100미터마다 주저앉았고 몇 번이고 골목에 토했다. 겨우겨우 고시원에 들어간 후, 그 얘길 들었다. 타이밍 한번 얄궃다.


  최대한 정신을 잡고 설명을 하려 했지만 횡설수설했다. 서울에 와서 의지할 곳 없어, 그래서 그냥 공연에 조금이라도 일하며 잘했다는 칭찬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고. 괜한 헛소릴 했다. 그는 일단 다녀와서 보자고 얘기했다.


한 달이 지나도 그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떨어져 나갔다는 생각을 했지만, 주변에 춤을 춰 온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보기로 했다. 경솔한 언행이었다고 말하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연락이 닿아야 그러든 말든 할 텐데,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구구절절을 넘어 구질구질한 카톡에는 또다시 해외 일정이 잡혀 있으니 그 이후에 여유가 생기면 보자고 했다. 그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감독에게 다시 연락했다. 서울에서 내려와 한달 반동안 폐인으로 산 후였다. 잘못된 언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함께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될 수 있다고 했다. 춤에 목숨걸고 하는 사람들인데 방해가 되는 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아. 내가 문제였구나.


1년 반 준비했다. 2주 만에 쫒겨났다. 멋진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그 무용단을 하도 좋아해 사온 모자와 옷가지들, 그리고 원래 있던 내 옷들에 박아넣은 그 무용단의 마크를 계속 보고 있다. 오늘, 감독에게 연락을 받을 때도 이 무용단의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되돌아오는 것 없는, 상대가 바란 적 없는 애정을 가진 사람의 삶이란 이렇게 웃기고도 슬픈 법이다. 내가 가진 물건 중 무용단과 관계가 있는 것을 모두 버리면 나는 입고 다닐 옷이 절반은 사라진다.


춤을 10여년 췄다. 전공으로 하지 않았다. 전공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이도저도 아닌 채 서른하나가 되었다. 필사적으로 춤췄냐 물으면 잘 모르겠다. 열심히 췄다. 조금 더 납득 가능한 이유로 쫒겨났더라면 내 기분이 좀 더 나았을까.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물속에 들어간 것 같다. 주위 소리가 먹먹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담배도 무용단 가기 전 오만 걱정과 근심으로 인해 31살 인생 처음으로 피기 시작했는데 이제 남은 건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뿐이다.


길게 쓰고 싶진 않지만, 10년지기 친구와도 아주 크게 싸웠다. 그는 절연하자고 했다. 나같이 성격 안 좋은 놈이 망하면 남들이 아주 우스워하고 좋아할 거라고 했다.


뭘 하고 살아야 하지. 목표도 목적도 없다. 떠다니지도 않고 그냥 가라앉는 기분이다. 오후 네 시에 깬다. 입맛이 없고 움직임이 없다. 사는 게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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