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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Aug 14. 2023

으따따 으따따따

으따따 으따따따

내가 연습실에서 배우고 기억하는 유일한 말이다. 동작에 맞춰서 으따 으따따 으따따따. 온갖 의성어 중 그게 괜히 마음에 남는 걸 보면 아직도 미련인지 집착이 한창이다.


집에 칩거한 지 5달이 되어간다. 돈은 거의 안 쓴다. 지난 달엔 버스비가 8천원인가 나왔다. 병원 한 번 다녀오고, 병원비 한 2만원 나오고. 보험비 만원. 핸드폰비 3만원. 담배값 4500원. 밥은 집에서 대충 아무거나 비벼 먹는다. 모친의 손이 아픈 이후로 설거지를 맡아 하게 됐는데 설거지 내놓는것도 귀찮고, 식욕도 없다시피 해서 하루에 두 끼 정도 그냥 큰 그릇에 아무거나 적당히 비벼서 먹는다. 개밥같이 생겼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냥 살려니까 처먹는 거지. 정말 아귀아귀 입에 구겨넣는다.


새벽엔 가끔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간다. 담배를 피운다. 한 두어 대 피고 집에 들어간다. 매일 아무런 의욕이 없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가끔 방을 찾아들어오거나 거실에서 마주친 모친께선 무슨 얘기로 시작을 해도 직장은 어떻게 할 거냐고 한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방에 앉아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그때 만약' 같은 일이다. 내가 좀 더 사회성이 좋았더라면, 눈치가 있었더라면, 돈이 많았더라면, 서울에 살 재력이나 깡이 있었다면.. 등등의 생각은 결국 연습실에 남아 계속 춤을 췄더라면 뭐라도 되었거나, 되어가는 중일텐데.. 


나만 낙오되고 추방되었다는 그 너절한 집착.


방이 많이 더러워졌다. 어제는 침대에서 음료를 마시고 곽을 그냥 침대 아래에 던져 두고 잤다. 내가 이렇게까지 너저분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면봉, 책, 약봉지, 꺼내먹은 약봉지, 머리끈 등등이 책상 위를 굴러다닌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항우울제를 하나 삼킨다. 그리고 자기 전엔 또 저녁약을 먹는다. 요샌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자고 깨면 한 시간은 그저 멍하고 짜증이 난다. 내 감히 겪어본 일들과 먹어본 약을 종합해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뭐라도 되고 싶다.


친구가 며칠 전 불러내 술을 사 주더니 요새 MBTI 중 너는 E가 되고 싶어하는 I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조용조용하다고 치기에는 급작스럽게 신나하기도 하고, 관심과 시선을 받는 일도 즐기니까. 이러니 저러니, 생각을 하다보면 모친께서 무슨 말을 해도 '일은 언제 할거니 뭘 할거니' 로 대화(?)를 끌어내듯, 나도 연습실에 있었다면, 으로 생각이 도착한다.


최근엔 몇 가지 알바나 활동에 지원했고, 거의 모조리 떨어졌다. 남은 것도 기대를 크게 하지 않으려 한다. 집이 불편해 떠나고 싶지만, 나는 나를 스스로 먹여살릴만큼 부지런하지 않고 유약한 것도 알아 나에게 혐오를 느낀다. 내가 나가면 방의 프로젝터도 못 볼테고, 게임도 못 할테고, 그저 삶이 무료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는 행위들은 모두, 아니 숨쉬는 일조차 돈이 드는 일이라는 걸 잠깐이지만 경험해봤다. 나는 나가 살 수 있을까. 


며칠 전엔 기분이 왠지 살짝 좋아서(아마 새벽에 산책을 다녀와서인듯 한데) 방에서 춤을 췄다. 어설픈 동작을 하다가 속으로 으따따따, 하는 나를 알아챘다. 쫒겨나놓고도 아직도 미련이 그래 남았나. 생각 자주 한다. 구걸을 해서라도 다시 연습실에 들어가는 나를. 안될 일이란 거 알아도, 그냥 그렇다. 모두가 내가 쫒겨난 걸 알고, 그게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이간질 때문이었든, 결과는 너무 확고하고 명료한데 나만 아직도 그냥 으따따 으따따따 하던 게 좋았나보다.


심지어 옷을 버릴 수가 없다. 무용과 관련된, 아니면 그 무용단과 관련된 옷을 모두 가져다 버리면 나는 입을 옷이 없어지는 수준이다. 반팔. 바지. 모자. 장갑. 양말. 무슨 정신으로 서울 올라가기 전에 옷을 다 가져다 버려서는. 나름의 각오였겠지만 돌아오니 매일 입는 옷이 족쇄 같았다. 어휴.


춤을 추면 겸직은 피할 수 없다. 잘 된다는 보장 역시 전혀 없다. 수백 수천 중 두세 명 살아남는 세상이고, 그 수백 수천명이 내로라 하는 학교를 이미 졸업한 뛰어난 무용수들이니까. 그런데 나는 왜 이런데에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 인생에 무용수라고 말하면 고고하게라도 나를 포장할 수 있어서인가. 


거울을 보니 우둘투둘하고 수염이 삐치고 눈이 퀭한 사람이 보인다. 으따따 으따따따. 으따따. 눈을 감추려 선글라스를 써 보고 불도 어둡게 한다. 이 인생 어디로 갑니까. 으따따따.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안주삼아 저녁엔 소주 마시고 담배 태우고 구부정한 자세로 삽니까 으따따. 예술의 전당에 한 번 오른 일반인은 이렇게 되먹지 못한 꿈을 씹고 살아야 합니까. 


으따따 으따따따.


살풀이춤을 출 줄 안다면 출 것이다. 으따따 으따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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