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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매니저Y Mar 26. 2022

당당한 삶을 살고 있나?

# 나의 삶을 반올림한다_1.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학교운동부 학부모로서 부적절한 찬조금이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도자에게 일체의 금품, 향응, 편의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나는 지도자 평가와 청렴의식 제고를 위한 각종 학부모 연수에 참여한다.

나는 학교 운동부 지도자와의 신뢰 회복과 청렴 의식 문화 장착에 앞장선다


얼마 전 위와 같은 내용을 철저히 지키겠노라는 '청렴서약서'에 사인을 했다.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내용을 유심히 읽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크게 위의 사항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보험성 용서가 습관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무심코 한 나의 선택이 부끄러운 일이었구나...


청렴 서약서 안의 네 가지 항목의 말을 해석해보면...


부적절한 찬조금을 조성하여 자신들의 자존심을 자키지 못했으리라

지도자에게 금품, 향응, 편의 등을 제공함으로써 떳떳하지 못한 이득을 보려 했으리라

청렴의식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테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청렴 의식 문화 장착에 힘쓰라는 것.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곪아버린 많은 것들이, 진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작은 정성마저 불가하게 만든 지금의 상황들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어쩌면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많은 것들을 이미 행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몰라서 생각 없이 따르는 선택만 했던 과거, 하지만 많은 것을 알아버린 지금 나는 


쪽팔려
So embarrassing
창피해

관행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의견 없음이 YES가 되고, 모두가 YES 할 때 NO 할 수 있는 용기는 없다. NO의 마음가짐을 표현할 방법을 생각하는 순간마저 비난을 받았을 때 알았다. 이 길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나를 매우 불편해한다. 

"왜? 그래야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에  "그런데 너는 왜?"라는 반문을 받는다.

그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나에게 총대를 건네기도 한다. 

나도 내 아이를 위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당신들과 같은 부모인데, 왜 내 뒤에 숨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요청을 해봤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지라도 절대 그 의견에 힘을 보태는 이는 없다. 미꾸라지처럼 참 잘도 피한다. 


나도 피하는 선택만 하는 것이 답일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고자 했던 선택들이, 결국은 창피한 일이었구나.. 바꿀 수는 없어도 나의 다름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이 당연하게 용인될 수 없는 방지턱 정도는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꾸려 하지 말고 변화의 시작점을 찍는 일은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고, 훗날 당당해질 수 있도록..


부패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


당당함이 편해지는 순간?


'제가 잘 몰라서요'

사람들이 이 말을 무기처럼 사용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뜻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애매한 상황에 당당하게 '제가 잘 몰라서요'라고 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아는 걸 안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 알아도 모른 척 아니 모르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일도 많다. 

아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합리적인 의심이 생긴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합리적 의심

합리적 의심에 당당해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나

하지만 그 합리적 의심조차도 설명을 들으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해질 수 없는 일들은 언제나 축소되고, 숨겨지고 , 드러나면 영원히 덮어버리는 순환구조를 이루는 것 같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함으로써 당당해지는 선택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당당해지기보다 남을 의식하는 선택을 더 많이 하고 살고 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마음의 병이 되는가 보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우리의 몸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육체의 질병을 단순히 육체적 원인에서만 찾지 않고, 심신 양면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심신의학이라고 불린다.

요즘 이 의학적 사실에 깊이 심취해 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편안한 선택에 집중하려 애쓴다. 


내 마음이 불편한 선택

내 마음이 편한 선택을 통해 나에게, 그리고 나의 가족들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란다. 

그런 나를 보며 자란 내 아이들이 이 세상을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공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살다보니 성공한 삶이었더라 하고 말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고 있나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함으로 마음이 편해진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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