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매니저Y Nov 10. 2022

Plan B가 필요하다.

꿈이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도 꿈이 있다.

12월이면 상담이 시작된다.

운동선수들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적어도 6개월에서 8개월은 빠르다.


진학을 희망하는 학교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 대해서 그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 먼 예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생각하던 때와

시험대에 오른 아이의 실력이 평가받는 1차 관문이기도 하고,

아이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선수의 학습권 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동계훈련에 대한 질의응답을 가진 자리에서, 한 달가량의 기간 동안 합숙하며 지내는 기간 동안 아주 짧은 단 30분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거나, 부족한 학습을 보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하루 종일 운동하는 아이들이 돌아와 책, 공부가 웬 말이냐는 어이없음에 비웃었던 부모들의 반응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창피하기도 했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한참 뒤에 동계 물품 준비물에 '읽을 책 3권'이 들어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선수의 학습 보장권이라던가,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키우고자 하는 국가적 분위기를 반기는 나는 현실성 없는 일에 정부가 힘을 쏟고 있구나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공부를 하건, 책을 읽건 운동이 아닌 이외의 것은 철저하게 개인의 몫이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팀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철저하게 팀 전체적인 분위기에 달려있다.

특정 종목 선수이지만 다양한 종목을 배우고, 학교 생활을 우선으로 하는 미국 시스템을 동경하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프로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아직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다른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쯤 감독과의 면담 자리에서 들은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공부를 열심히 시키시나 봐요"


주 1회 수학 과외를 하고 있고, 영어는 나랑 틈틈이 하는 정도라고만 대답했다.

운동하면서도 나름 성적이 나쁘지 않은 아이를 칭찬하려나 순간 기대했다.


"절실함이 있나요?"


아!!!!!!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절실함이 있는 아이들은 팀 운동 후에도 개인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프로는 절실함이 없으면 어려운 길이라고.


최소한의 공부도 시키는 부모에게 절실함이 있냐고 묻는다는 것

이 지도자는 무슨 생각일까?

주저하는 순간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다.


타학교 선배들의 진학을 지켜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어떤 부모들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리고 독하게 운동과 공부를 병행시켰고

운동선 이수지만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타 지역으로 아이 진학을 마무리했다.


그 정도 내공까지는 없지만 나는 내 아이를 믿기에 최대한 아이에게 맡기는 선택을 했다.

공부에 진심은 아니지만 욕심은 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크다.


85, 90, 95

재미있다는 수학 과목에서 매 시험 5점씩 올리고 있고, 마지막 기말고사에서는 기필코 100점이라는 점수를 획득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근데 아들아.... 영어는?????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보는 거지 뭐

나는 너를 믿는다.


회의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질문에서 돌아온 비웃음

그리고 이어지는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받은 뒤로

약 1년이 시간이 흘렀다


아이의 진학을 위한 상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작년보다 더 무거운 주제로 조만간 다시 그와 마주해야 한다.


어떤 질문으로 상담이 시작될까?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해본다.


"이제 절실함이 있나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절실합니다.

절실하기 때문에 공부도 시켜요.


너무 절실하고 간절해서 Plan B 그리고 때로는 Plan C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선수 생활.

프로 지명이 아니면 실패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즐길 수 있어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는 늘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믿고 갑니다.

그것이 아이에 대한 저희의 자신감이에요.

아이의 실력만을 믿고 가지는 않아요.

저희가 직접 구하고, 직접 듣고, 직접 본 것들을 토대로 아이의 미래를 아이와 함께 결정하고 싶어요.

당신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통찰력이 필요해요.

아이 스스로의 노력과 꿈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생각을 표현하는 지금 최선이에요.

(저의 최선이 당신에게 닿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여유 부리지 말라고 종용합니다.

긴장 늦추지 말라고 다그쳐요.

그래도 아이가 나아가지 못한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열린 마음으로 저희와 의논해주세요.

아이가 단단해지고 치우침 없이 배우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써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글은 써지는데 막상 마주하면,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을 꺼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예기를 들어줄 상대가 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지는 의문이다.


아이는 꿈이 있다.

아이의 꿈은 진행형이다.

꿈이 있는 아이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꿈이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도 꿈이 있다.


언제나 너의 행복 야구를 응원해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는 게 전부일 수 있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