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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Dec 09. 2020

일하는 백수, 활동형 니트를 말하다.

[2020 N개의 공론장⑫] 일하는 백수, ‘활동형 니트’ 공론장 기록

공론장 일자: 2020년 11월 9일

장소 : 청춘삘딩

주최 : 사회비행자 · 청년허브

기록 : 김미래


사진 1. N개의 공론장을 진행한 서울 금천구 청춘삘딩

예술, 활동, 기획, 연구 등 공공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시선 안에서 ‘백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일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공론장을 주최하는 사회비행자는 자율적이거나 공공적인 일, 혹은 그 경계에서 일하지만 고정된 수입이 없어 생계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활동형 니트’라 정의하였습니다. 존재 자체로 이 사회의 일이 가진 모순을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이번 공론장을 통해 ‘활동형 니트’라는 개념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진 일의 모순을 드러내고, 나아가서는 정책 제언과 새로운 방식의 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만들어봅니다.




1부 발제 


발제1. 나는 사회에서 정의되지 않는 사람(바람)

정의되지 않은 사람을 ‘니트'로 정의하는 사회 앞에서 발표합니다. 저는 사회에서 정의되지 않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사회적 기준으로는 남성으로 분류되지만, 저 자신은 젠더퀴어라고 부릅니다. 출생 당시부터 심장 희귀질환을 앓은 심장 장애인이면서, 남성에게 성적 이끌림을 느끼고, 코로나19 긴급 청년일자리사업 중 하나로 진행되는 비영리단체 단기 일자리를 통해 입금을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입니다. 1인 가구로 살며 가사노동을 합니다. 문장은 많지만, 딱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죠. 


저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좋은 일 하시네요"입니다.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이로 인해 저는 활동에 정당한 수준의 금전 보상을 요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좋은 일'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니트'라는 표현이 결국 사회에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삶을 쉽게 부르기 위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의 범주는 매우 폐쇄적이고, 그만큼 활동형 니트는 정체성을 지니고 이해받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인 셈이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처럼, 활동형 니트를 위한 논의와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제2. 반드시 노동자는 아니리라, 근미래의 우리는(류석현)

팬더믹이 일상을 좌우하는 현재 환경에서 부각된 직업군은 단연 예술가일 겁니다. 예술가도 물론 장르 안에서 노동하는 존재로 인정됩니다. 하지만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딱 하나를 골라 속하라는 주문은 꽤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예술가/ 비평가 등 행정적 직업적 구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저를 직업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말은 음악평론가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한 음악 매체에 정기적으로 기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음악잡지가 폐간되었고, 저는 잡지를 사주지 않는 독자들을 비난하기도, 출판사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산업의 급격한 변화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자연스러운 사양의 형태였는데,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중후반 체감했습니다.


2016년에는 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전까지 예술가 정체성은 지니지 않고 있었지요. 저술이나 비평 말고도 저는 아카펠라 음악을 직접 만들고 공연하며 소리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비평가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 문화기획자로 일자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모 민간문화재단에서 활동하며, 안정된 수입과 넓은 스펙트럼의 기획 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문화재단의 경력, 즉 나의 활동 혹은 나라는 인간 자체를 보증해줄 수 있는 소속집단이 있었기에 경력을 증명하기 어려운 숱한 예술가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사회구조적으로 예술가란 직업군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들은 늘고 있고, 더는 소수의 천재만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도권에서 주창하는 “누구나 예술가다"라는 말은 시민들의 독창성과 감각을 존중받는 사회를 상정합니다. 예술인이 창작과 공공성을 위해 역량을 쏟을 때 세금으로 지원하듯, 모든 시민에게 보편복지의 형태로 주어지는 시민수당 개념이 자리 잡기를 기대해봅니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가치에 부합되는 역할을 활동형 예술가들이 만들고 수행해나간다면 더 많은 공동체에 필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확대되겠지요. 모두를 나 자신과 동등한 위치로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은 힘겹지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발제3. 프리랜서 지원제도 현황 및 과제(오승재)

현재의 노동법 체계는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법률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모든 권리를 보장받거나 모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all or nothing)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동법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근로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죠. 현재 근로기준법상에서는 종속성을 엄격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호 범위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오분류'의 위험도 크지요. 배달 라이더의 사례를 살펴보면,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에 해당함에도, 법적 보호 의무를 피하기 위해 기업이 플랫폼을 만들어 근로자성을 약화하고 지원제도의 취지를 몰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오분류' 사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프리랜서, 나아가 활동형 니트를 위한 지원 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들 것입니다.


국내 프리랜서 지원제도 현황을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서울, 경기, 부산에서는 ‘프리랜서 지원 조례'를 재정했고, 성남에서는 ‘일하는 시민을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가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표준계약서 양식을 도입하는 한편, 표준단가나 공정보수 가이드라인, 고용보험 적용,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고려를 기반으로 프리랜서 지원 체계가 잡혀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전통적인 ‘회사원'에 해당하는 정형노동에 정부와 대다수 지자체의 지원 제도와 정책이 쏠려 있다는 점은 여전히 지적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자체 시민 참여 거버넌스를 통해 활동형 니트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토대로 적합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제4. 일로 정의되지 않는 일을 통한 지속가능성(시원한형)

“사회비행자는 법인인가요? 비영리단체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제 생각에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가진 철학과 가치일 것 같은데 말이죠.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면서, 사회적 가치보다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창출에 대한 중요성을 더 강조받기도 합니다. 가치 있는 일과 돈 버는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 둘은 꽤 자주 배치됩니다. 저는 10년 넘게 자율과 공공의 경계에서 수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 기간 번 돈이 최저임금 받는 임금노동자의 몇 개월치 월급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사회적 경제라는 범주 안에서 일하고,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사업이 늘었다는 이유로 10년간 번 돈만큼의 돈을 1년 사이에 벌게 되었습니다. 


‘청년팔이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세대 담론이 실제와는 다르며, 정치 이슈나 사회문제의 책임을 청년에게 지운다는 뜻이지요. 팔리는 것은 청년뿐이 아닙니다. 니트에 대한 연구자의 연구는 존재하지만, 니트 당사자의 연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년 안에 동질화될 수 없는 주체들의 정체성과 욕망을 세분화, 구체화하여 다양한 당사자 연구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정책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정부에는 각 지역에 맞는 생활임금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이 제도는 임금만 보호합니다. 예술활동, 공익활동, 커뮤니티, 서포터즈 등 열정페이로 착취당하고 있는 문제를 필두로, 제도 안에 산재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정책을 감시하는 비정부 기구를 두어 개선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활동형 니트를 위한 제도로 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율적이고 공공적인 일에 대한 활동형 니트 수당은 이들의 생존기반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지원금이나 복지의 형태가 아닌, 엄연한 일에 대한 대가로 주어져야겠지요. 


활동형 니트를 개념화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만들게 된 배경은 일에 대한 폐쇄적인 기준과 제도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시급하지만, 이로써 또 다른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증명/선별/결과보고 등이 가진 문제는 여전히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대안은 보편복지의 실행입니다. 우리는 활동형 니트라는 특수한 계층의 생존과 지속에 대한 논의로 시작했지만, 이 논의는 결국 비노동 사회에서 우리 일과 사회시스템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됩니다. 



2부 토론 : 주제에 관한 자유대화

사진 2. 공론장 진행 모습


공동체가 답인 것 같다고 하셨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그림인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저 역시 니트 활동을 할 때 공동체에서 기운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니트족을 모아 팀장이 아침마다 하고 싶은 일들 미션 인증하게 하고, 직함/소속팀이 적힌 명함도 만들어 나눠 가졌지요. 이런 가상회사를 만드는 별거 아닌 일이 크게 위안이 되더라고요. 혹시 이상적인 커뮤니티의 형태가 이런 걸 염두에 두신 걸까요?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전수되고 향유되는가를 따져보면 소수를 위한 예술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관계의 수평성을 전제하는 공공을 위한 예술의 형태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를테면 멘토가 아니라 코치, 교육자가 아니라 가이드가 된 예술가가 공익적인 가치의 실현을 리드하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돈을 벌라고 돈을 주는 것, 즉 창업지원금이나 복지가 아닌 형태, 이 활동 자체에 돈이 주어져야 한다라는 발표 내용이 있었는데, 결국 이것은 단순히 보면 시장 안에서 재화 혹은 용역을 제공해서 돈을 받아야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합니다.

보편복지, 즉 시민수당의 형태가 되는 거겠죠. 이번에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자들에게 200만 원씩을 일괄 지급한 일이 있습니다. 이는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은 기획자라는 점을 인정해주었다는 뜻이겠지요. 구체적인 활동을 약속받아 이행보조금으로서 주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열정페이를 요구받는 직업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완전히 수용하고, 중간적 협의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온전한 감사와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서입니다. 공공성,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 추구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면, 애초에 소수자성, 다양성을 담보하는 활동의 영역조차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활동형 니트라는 정의를 위해서도 더 많은 공동체적 행동이 필요할 텐데, 이 조직의 가이드라인이 요구될 것이고, 이 규칙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사람이 모이는 만큼 이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대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는 작업에 대한 전망, 어려움과 더불어 청사진이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사회비행자의 문제제기에는 동의하지만 거시적 관점/ 결론에서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긍정적인 담론의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지망생이자 취업준비생입니다. 그간 시행착오를 통해 어떤 장소에서도 직업가치관을 녹여낼 수 없었던 괴로움이 컸습니다. 삶이랑 일치하는 업을 갖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이러한 논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저마다 펼쳐져 보이기를 희망합니다.



(일하는 백수, '활동형 니트'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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