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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Dec 22. 2022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팀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공통의 가치 지향에 따라 모여서 무급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사람들 중에 어느 쪽이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 보통은 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이 당연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리라는 이유일 것이다. 한편, 다른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기업은 경영하는 사람들과 고용된 사람들이 각자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되도록 짜인 조직이다. 직원들은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보다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편이 낫다. 그래야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다닐 수 있다.


그에 반해 가치 지향적인 일에 나선 사람들, 특히 시급하고 중대한 사회문제를 위해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적정 거리를 지킬 수 없다. 단체의 오랜 운영 원칙도 때로는 무시될 수 있고, 갓 들어온 회원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치가 확산되고 사회문제 해결이 앞당겨진다면 그쪽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괴로울 수 있다. 계속 새로운 사람들과 협력하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며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청년들의 활동 단체인 ‘기후변화청년단체GEYK’이다. 


기후변화청년단체GEYK의 조민경 운영위원, 김선률 부대표, 김지윤 대표(왼쪽부터).


서울시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 지원사업에 선정된 7팀 중 하나인 이 단체의 대표 김지윤씨, 운영위원 김선률 조민경 씨를 12월 4일 오후,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지윤씨는 30대 초 나이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고, 20대 선률씨와 민경씨는 대학생이다. 단체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60여 명의 회원은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다. 


이 단체의 특징 하나는 상근자가 없다는 것이다. 선률씨는 “교류하고 있는 환경단체 중에서 상근자 없는 단체는 못 봤다”면서도 지금 방식에 장점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근자가 있으면 활동 방향과 의제 설정을 주도하게 되고, 나머지 회원들은 직접 일하기보다는 회비만 내는 존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단점도 있다. 중심축이 없으면 일부 회원들이 강한 의견을 낼 때 그 쪽으로 방향이 쏠리게 된다. GEYK에서는 그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5명의 운영위원들이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


GEYK의 원칙 상 회원들은 각자 1개 이상의 그룹에 속해서 일해야 한다. 도시농업, 식물다양성, 지속가능한 식생활 등 주제별 그룹도 있고 뉴스레터, 미디어 등 기능별 그룹도 있다. 외부에서 협력 요청이 생기면 TF가 운영되기도 한다. 신입 회원들은 이 중에서 한 개 그룹 이상에만 들어가면 되지만, 활동 6개월이 넘은 회원들에게는 2개 이상 그룹 활동을 권고한다. 이 원칙은 현재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 때 15% 정도였던 직장인 회원 비중이 최근 몇 년 사이에 40%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중에는 시간을 많이 낼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이라도 기여하면서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이를 허용해 주는 것은 원칙을 무너트리는 것인지, 그럴 때 다른 회원들에게는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런 점들이 고민이에요.”(김지윤)


오히려 돈 받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어요. 
기후위기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아예 이 일을 시작도 안 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급한 의사결정 사안이 생겨도 문제다. 회원 수가 15명 정도였을 때는 메신저 투표 기능으로 단시간 안에 결정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수가 많아져서 시간도 오래 걸린다. 타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일 경우에는 “오늘 오후 4시까지 결정해서 회신 달라”는 식으로 요청이 오기도 하는데, 마침 직장이나 학교에 있는 회원들은 시간 안에 참여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상황이 급할 때는 대표나 임원진이 의사결정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합의된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사안에 따라 불만이 제기되기도 하고요. 주요 회의나 기자회견의 참석자를 정하는 일, 회식비 기준을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조민경)


그러고 보니 지윤씨도 직장인이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시간 내기 쉬운 편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일까? 지윤씨는 “퇴근하고 화상회의 하다 보면 밤 10시가 되는 일이 다반사이고, 주말에도 계속 일하게 된다”고 했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열정을 보일 수 있을까? 이들은 “오히려 돈 받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어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아예 이 일을 시작도 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연령대가 20대에서 30대 초까지로 좁은 편이라 세대 차이 문제는 없을 것 같았는데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다고. 직장인과 대학생들 간에 소통 방식, 특정 사안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지윤씨는 “특히 공정과 형평에 대한 이해와 요구 정도가 세대에 따라 다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도 했다.


https://youtu.be/Kbl1Kf8OZpw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2 문제해결 솔루션랩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GEYK이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지원한 것은 이렇게 쌓이고 있는 의사결정 또는 의사소통 상의 문제를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운영진 워크숍, 그리고 이 인터뷰 하루 전이었던 12월 3일,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함께 일하기 위한 원칙들을 정했다.


첫 번째 원칙은 ‘공감되게 말하기’다. 언뜻 들으면 평범한 말 같지만 이 원칙이 없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었는지 경험해 본 회원들의 호응이 상당했다.


“그동안은 말하는 사람은 자기 식대로 하고, 듣는 쪽에서 알아서 공감하면 된다는 식으로 소통했던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는 말하는 쪽에서 먼저 ‘공감되게’ 말하자는 원칙을 세우자고 했어요. ‘존중이 먼저’라는 마인드셋을 가지고 일하자는 거죠.”(김선률)


또 다른 원칙은 효율성을 생각하면서 일하자는 것이다. 안건마다 의견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논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거나 한 번 끝낸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다시 이어지는 것은 문제라는 공감대에 의한 원칙이다. 



그 밖에도 이날 워크숍에서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데 5시간이 걸렸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토요일 낮에 5시간을 낸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텐데, 전체 회원의 절반이 넘는 33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 ‘가치지향적으로 일할 때의 열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 사례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도 세 사람은 일요일 오후의 한 시간 이상을 내놓고 있었다. 게다가 인터뷰 후에도 GEYK의 또 다른 행사가 예정돼 있다고. 


마지막으로 이들 각각에게 일과 활동을 병행하는 데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대학교 3학년으로 진로를 고민중인 민경씨는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가치관과 앞으로 가질 직업이 일치했으면 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부문에서 일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졸업을 앞둔 선률씨도 기후변화 부문에서 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환경정책과 환경공학을 전공한 것도 어려서부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민도 있다. 이 길을 가면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생활비를 추가로 버는 방법, 즉 가치지향적인 일과 소득을 버는 일을 병행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같은 고민을 몇 년 먼저 했던 지윤씨는 비영리 쪽 진로는 자신과 안 맞다고 일찌감치 결론짓고 지금의 직장에 들어갔다. 소득보다는 일하는 방식이 자신의 지향과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영리 기업에 다니며 활동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지윤씨는 “부캐라는 말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했다. 전에는 직장 동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조심스럽고 정체성의 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캐’로 설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만 놓고 보더라도, 일과 활동을 병행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씩 다른 가치관을 드러낸다. 크게만 볼 때는 한국 사람들이 다 같은 방향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꼭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공감되게 말하기’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방법 말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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