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시간
퇴사자는 시간이 많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뭘 하려고만 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이것은 정말 숙명 같은 문제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할 시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왜 부족하기만 한가?
예전에 직장에서 만난 한 선배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말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나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전체를 지배했었다. 그래서 정말 시간이 없는 순간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워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도 시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몇 년이 흐르고,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30대 초중반까지 '나는 시간을 가지고 노는 달인이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을 자유자재로 수행했다.
후배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은 능력 없음을 자백하는 것'이라는 격언을 대물림 해 줬다. 그리고 그 후배들이 다시 밤새가며 일하는 것을 보며 '그래 이제 너희들도 이제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흡족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생 할 것 같았던 그 일을 그만둘 즈음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슬픔도 밀려왔다.
내가 31번째 중 1번 퇴사를 결심하던 날,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당시 음악을 듣기 위해 꼭 필요했던 MP3에 좋아하는 음악을 가득 채워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힘이 닿는 데까지 자전거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눈물이 터져 나와 자전거를 멈춘 건 장기하의 '그때 그 노래'라는 노래를 듣고 있을 때였다.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어쩌면 초기적인 우울증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 머리와 가슴속에는 그 감정이 남아 있지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정확히,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었구나.
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후로 한동안 자전거에서 내려와 걸으며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내 인생이 이걸로 끝인가?
설명은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나에게 맡겨진 일을 시간 내에 수행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에 대한 모든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굴레에서 나는 영원히 바둥거리는 게 전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설명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그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일 뿐이었고, 이제 와서 말을 하는 것은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다 끄집어낸 이유다.
당시 분명한 것은 내가 불행했다는 거다. 일을 잘할 수 있게 되고, 또 시간을 어떻게 쪼개야 그 일을 시간에 치이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지 감이 온 시점에서 느낀 그 감정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천천히 감정을 곱씹으며 사직서를 썼다.
당시에는 가족과 친구, 모두 회사를 그렇게 쉽게 그만두는 거 아니라고 충고했다. 다음 스탭을 준비하고 그만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직장은 월급 받고 다니면 절대 잘리지 않는 준 공무원과 같은 곳이었기에 더더욱 만류했다. 심지어 지금도 부모님은 그때 그 회사를 왜 나와서 고생하냐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 회사를 나오는 데는 그날의 내 감정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어야 했다.
찾아보니 많았다.
그 이유들 하나하나가 충분히 내가 철밥통 같은 직장을 때려치울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그날의 감정을 대체할 만한 수준의 이유는 없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그 감정은 빼고 얘기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시간 타령이다. 익숙해지는 일이 없다. 퇴사를 밥 먹듯이 하는데 일이 익숙해질 리가 없지...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있다. 나는 예전보다 행복하다.
퇴사 때 흐르던 눈물과 마찬가지로 이유는 불분명하다. 물론 그때처럼 감정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살림도 좋아졌고, 결혼도 했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답답한 심정도 사라졌다.
예전 선배의 말대로 시간이 없어서 라는 변명은 능력이 없다는 말일 지도 모른다. 근데 행복을 잊은 채로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불안하더라도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니체의 말에 위안을 또 얻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