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다. 지난주에 성인 에세이 출간 과정인 '어쩌다 작가!'가 막 끝났는데, 바로 이어서 시니어 책 출간 과정을 시작하게 되어 조금 숨이 찬다.
언제나 모든 수업 1차시는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이다. 어떤 분들이 신청하셨을까? 출석부를 보고 있어도 알 길이 없다. 연세는 어떻게 되셨을까? 여성일까? 어떤 마음으로 이 수업을 신청하셨을까? 첫 차시에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실까?
읽어드릴 책을 결정 못 해 오전 다른 수업을 하면서도 마음이 내내 복잡했다. 후보는 <나, 꽃으로 태어났어> 그리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일단 두 책과 활동지를 다 들고 수업을 시작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정한다. 오늘은 <나, 꽃으로 태어났어>다. 어쩌면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는 필요치 않겠구나 싶기도 하다. 나이를 탓하며 주저앉을 분들이 아니다! 오히려 내 에너지를 더 채워야 할 분위기다.
첫 시간이라 슬슬 몸풀기로 전체 과정도 살펴보고 우리는 어떤 형태의 책을 발간할지 의논도 하면서 서로를 느껴본다.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생김새, 옷차림, 나이 등에 눈을 두지 않으려 애를 써본다. 눈이 호강하는 그림책 <나, 꽃으로 태어났어>를 읽어드리고 내 이야기로 바꾸어 써보았다. 꽃들은 햇살을 받으며 다른 꽃들과 어울려 피어날 때 활짝 피어났는데, 나는 언제 이렇게 멋지게 활짝 피어났을까? 꽃들은 다른 이들을 장식하고 마음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나도 누군가가 빛나도록 뒤에서 힘이 되어준 적이 있었나? 모든 꽃들이 가녀리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듯 지금 나도 이래서 아름답게 살고 있다!
몰입해서 글을 쓰신다. 30여 분이 훌쩍 흘러갔다. 젊은 사람부터 발표하자고 하니 65세 어머니께서 수줍게 웃으셨다. 결혼 후 방송통신대에서 다시 유아교육을 공부하시고 지금껏 어린이집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글을 듣다가 "그럼 그때 아이가 몇 살이었어요? 다섯 살? 세상에, 정말 대단하세요!"라며 나도 모르게 엄지를 척 든다. 아는 사람의 권유로 부동산 중개인 시험을 준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합격했다는 또 다른 어머니. "그동안 부동산을 하면서도 좀 부끄러워 직업을 숨기곤 했어요. 근데 나이가 드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힘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겠다 싶어 이제야 좀 뿌듯해졌어요." "어머니, 저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데요. 이사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집이란 게 참 인연이 있다 싶더라고요. 집에 오면 푹 쉬어지는 집이 있어요. 그런 좋은 인연을 찾아주시는 일을 하고 계신데요.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되지 않을까요?" 한다. 서로 감상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최고령 85세 어머니의 발표를 듣는다. "너무 추상적으로 쓴 것 같아요."라며 웃으시는 어머님께는 나도 모르게 "어머, 문학소녀셨죠?"라며 돌고래 비명을 지른다. 다른 어머님들도 모두 크게 웃으신다. 좋다.
65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른들을 만나 삶을 돌아보고 글을 쓸 예정이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조심스럽다. 그래도 이게 얼마 만에 볼펜을 들고 써보는 글이냐며 마냥 즐거우시다. 엄청 걱정하며 왔는데, 잘하면 끝까지 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단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그러다 보면 부러움과 섣부른 평가들이 오갈 수도 있다. 그러면서 마음이 상하거나 마음을 닫지 않도록 잘 살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서 이야기하지 않기! 다른 분들과 내 글 비교하지 않기! 건강 잘 돌보아 함께 가기!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까? 충만한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단하긴 어렵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이 16주 과정이 끝났을 때 선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앉아 있는 내가 훨씬 많은 걸 배우고 또 성장해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고 고단해도 글쓰기 강의만큼은 거절하지 못하고 자꾸 감사하다며 받아들이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