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서논술교사다. 16년간 해오던 약사 일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12년째.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만든 <해오름교사회>에 가입한 지도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논술교사들은 대부분 각각 개별적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한다. 그래서 늘 자신의 수업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지는 않은지 세상의 변화를 잘 담아내고 있는지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불안하다.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마음을 나눌 도반도, 끊임없이 함께 공부하고 읽을 도반도 필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교사회는 나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교사회에 가입하고 동아리 활동, 부서 활동에도 열심을 내어왔다. 즐겁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몇 해 전부터 교사회 홍보부에 가입해 선생님들과 분기별로 소식지를 내고 있다. 어느 단체건 간에 활동내용이나 품고 있는 뜻이 상하좌우로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사람이 혈액의 흐름이 막히면 쓰러지는 것과 매한가지다. 소박한 소식지이지만 마치 혈관을 흐르는 혈액처럼 교사회 선생님들의 안부를 전해주고 마음을 이어주는 매체라 믿으며 활동하고 있다.
올해 새로 구성된 홍보부 선생님들도 마음이 참 잘 맞는다. 귀찮은 일도 선뜻 맡아주시고 서로 공을 다투지도 않는다. 지금 홍보부원 선생님들이 있어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있었을게다.
<만나러 갑니다>는 오랫동안 소식이 뜸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선생님을 추천하면 우리가 대신 찾아가 소식을 묻고 인터뷰를 하는 프로젝트다. 어제는 그 첫 순서로 강원도 횡성을 다녀왔다. 새벽 7시 20분에 집을 나서 서울역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함께 기차로 횡성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일상을 떠나 나들이를 하는 탓에 선생님들 모두 신이 났다. 삶은 계란에 음료수, 삶은 고구마, 방울토마토, 바나나, 따뜻하게 구운 베이클, 과자 그리고 홍삼 젤리까지. 목적은 잊고 수다 삼매경으로 기차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도착한 횡성, OOO 선생님 댁. 고요한 숲 속 작은 집에서 정말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독서논술 수업 은퇴 후 바느질과 뜨개질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계신다. 그 일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작업실과 집안 곳곳을 채운 앙증맞은 자수, 뜨개질 작품들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성껏 마련해 주신 콩나물밥을 맛나게 먹고 후식으로 갓 딴 앵두와 오디를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바느질로 공깃돌과 공깃돌 주머니를 만들며 두런두런 살아온 이야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궁금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주변에서는 이름 모르는 새들이 지저귄다. 먼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의 마음이 가득 담긴 이야기들은 내게 건너와 배꼽 아래 단전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채워준다. 나른하고 달콤하고 행복했다.
우리가 방문한다고 이틀 전부터 집안을 청소하고 무얼 대접할까,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셨다는 선배는 그 일이 기뻤다 하신다. 분명 고단 하셨을 텐데도 그 가운데 기쁨을 찾아내시는 선배. 어떤 이는 생업도 바쁘기 그지없는데 소식지를 만든다며 강원도를 찾는 우리에게 오지랖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덕에 이리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지 않는가? 그래서 산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우리가 마음을 내고 다른 이의 고운 마음을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더 아름다운 무늬로 옷감을 짜고 도자기를 빚게 되는 멋진 일이다. 우리가 보낸 이 아름다운 하루가 교사회 선생님들께도 잘 전해지면 좋겠다. 다음엔 또 어떤 고운 마음을 찾게 될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