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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Feb 01. 2024

어느 단체손님의 창피스러운 퇴장

사발 커피와 2인석

조용한 카페에는 나 혼자였다. 카페에 있던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나른한 어느 평일 오후였다. 저 멀리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걸어오신다. 은발머리 단체 손님의 입장으로 카페 분위기는 단번에 바뀌었다.


카페에는 많아봐야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뿐이었다. 내가 앉은 이 자리도 2인석으로 아마도 의자 하나는 주로 가방을 놓은 용도로 쓰일 것이다. 할머니들이 함께 앉기 위해 테이블 두 개가 합쳐지고 간이 의자가 꺼내진다. 


노인들의 목소리는 항상 예상을 빗나갈 정도로 크다. 하지만 청력의 노화를 배려나 예의랑 연관 지으면 서러워진다. 내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간지러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듯 기침을 하는 것과 비슷하고 치자. 말 못하는 아기들의 칭얼거림이라 치자. 소음에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최대한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할머님들이 목소리는 모니터를 뚫고 내 자리로 넘어와 상황을 중계했다. 인원은 8명 시킨 음료는 4잔. 슬프게도 엔딩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런 데는 커피도 엄청 많이 줘. 무슨 사발 같은데 나와.”

“나 이거 한잔 다 못 마셔. 우리 나눠 먹자.”

“지금 여덟 분인데 네 잔 시키시는 거예요? 저희는 1인 1 음료예요.”

“아이고 그럼 나가야겠네. 한 사람에 한 잔씩 시켜야 한데.”

“그럼 우리 나가자.”

“아이고 창피스러워라.”


그냥 더 시키고 앉아 있자는 할머니도 있었지만 그냥 나가자는 할머니들의 입김이 더 셌다. 이 모든 과정을 예상했다는 듯 카페 사장님은 별말 없이 의자를 치우고 테이블을 원래 있었던 자리로 옮겼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익숙했다.


나에게는 항상 친절하던 사장님의 사뭇 다른 태도에 사실 조금 놀랐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찾아와 붐비는 점심시간이 되면 슬쩍 일어나 빈 테이블을 만들어 주는 혼자 오는 여자 손님. 카페 고양이를 귀찮게 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손님.  인스타에 사진과 태그도 자주 올려주는 단골손님은 8명이 와서 4잔의 커피를 시키는 단체 손님은 다른 것이다.


카페를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친구랑 카페 가면 한 사람당 한 잔씩 시켜야 되는 거 알지? 둘이 나눠 먹고 싶으면 스타벅스 가야 돼요. 거긴 안 시키고 앉아있어도 되니까. 그게 본사 정책이라 눈치 볼 필요 없다고 저번에 얘기한 거 기억하지? 양이 너무 많으면 숏사이즈 시켜요. 메뉴판에 없어도 숏사이즈 달라 그러면 조금 나와요. 개인이 하는 카페 같은데서는 남기더라도 한 사람에 한 잔씩 시켜야 돼. 꼭!”


다른 사람 눈에는 평범한 할머니였을 엄마를 단단히 단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할머니들이 어디로 가셨을까 뒤늦게 걱정이 된다. 이 근처에 여기 말고 카페가 없는데. 구부정한 허리로 어디까지 걸어가서 담소 나눌 곳을 찾으셨을까.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넓고 푹신한 의자가 있고, 작고 예쁜 잔에 커피를 담아 주는 곳이 여기 있던가. 여기 아니라도 본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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