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생 돼지띠로 한국에서 태어난

My Bestie, K를 만나는 날

by 리나

나는 71년생 돼지띠이다. 출생신고에 정식으로 올릴 내 이름을 지을 때까지 마땅히 불러줄 이름이 없어 "돼지"라고 어른들은 나를 부르셨다고 한다. 요즘도 고모는 나를 "돼지"라고 부르실 때가 있다. "돼지야" 하시면 "네" 하게 된다. 이 나이에도,


2017년 말 기준 한국 주민등록인구는 5천177만여 명이며, 이중 '돼지띠' 1971년생이 가장 인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라는 2018년 연합 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았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던 중,

'라떼는 말이야 하며 말을 시작하는 꼰대 부장 나이'

이 댓글에 공감하는 비슷비슷한 댓글, 그리고 이 댓글에 붙은 엄청난 숫자의 엄지 척,,

'아니 이것들이, 너희들 왕싸가지 MZ들이지?' 너희가 라떼를 알아?

MK 스포츠.jpg 출처:MK 스포츠


70년생 언니, 71년생 나, 73년생 동생, 76년생 막내

엄마는 첫째, 둘째, 셋째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 제한이 있던 그 시절에 주루룩 연년생으로 낳았다.


" 너 임신했을 때 어쩜 그렇게 여기저기 배부른 여자들이 많니? 그러더니 너는 학교 갈 때마다 이 고생이다."

" 엄마는 나를 쫌 일찍 낳거나 아예 늦게 낳거나 하지, 왜 하필 남들 낳을 때 낳아서, 내가 이 고생이야."

" 그게 맘대로 되니? 어쩌겠어, 이렇게 됐으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나는 중학생 상위 30 퍼센트 안에 들어야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고, 인문계 고등학교 상위 25퍼센트 안의 성적을 받아야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입학이 가능했던 한국의 베이비 붐세대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비슷한 성적에 비슷한 키에 비슷한 가정환경의 아이들끼리 친구가 됐다.

1등 하는 아이와 30등 하는 아이가 친구가 되거나, 맨 앞줄에 앉는 키 작은 아이와 맨 뒷줄에 앉는 키 큰 아이가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K와 한 반이 되면서 친구가 됐다.

우리는 맨 뒷줄의 "키 큰 놈들" 중에 속해 있었다.

"나는 니가 쬐금 좋더라" 하며 내성적인 나에게 K가 먼저 다가와줬다.


K에게는 연년생 자매만 있는 나와는 반대로 위로 나이 차이 나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인지 뭔가 톰보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리고 미드를 진심 좋아했다.

특히 "전격 Z 작전"이라는 타이틀로 방영되던 "Knight Rider"의 주인공 David Hasselhoff를 좋아해서, 드라마에 나왔던 차 얘기, 주인공이 입었던 가죽 잠바, 주인공이 했던 말 (더빙된 한국어였지만), 이 남자가 얼마나 멋있는지를 시도 때도 없이 얘기하곤 했다.




'너희들, 지금 학창 시절에 만나는 친구가 영원한 친구야.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순수하게 친구가 되기 힘들어."라는 선생님 말씀에, 뭐래.. '이중 인격자'


저번에는 우리한테 주변을 돌아보다가 친한 친구와 눈을 맞추라 하더니,

" 너는 나의 경쟁자야." 하며 외치라고 하더니,


아무리 절친이어도 은근 내가 틀린 시험 문제는 내 친구도 틀렸으면 하고 바랬고, 나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입으로는 "좋겠다, 수고했어." 하면서도 속이 상해 집에 가서 엄마한테 "OO은 이번 모의고사에서 OOO 받았대" 하며 대성통곡하던 우리들이었다. 그러곤 다음날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듯이 명랑한 척하며, 요즘 공부는 안 하고 잠을 얼마나 많이 자는지 텔레비전은 얼마나 많이 보는지, 요즘 로맨스 책에 빠져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둥 거짓말을 해 대던 우리들이었다.


이런 팍팍한 시대에 K는 '전격 Z작전'이나 떠들어 대고,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어서 선생님께 종아리를 맞아도 찔끔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다시 괜찮아지는 아이였다. 나한테 '넌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라는 소리를 듣고도 웃어넘기는 쿨한 친구였다.



작년 초, 오랜만에 K에게 톡이 왔다. "우리 한라산 가자".

언제 갈까?, 며칠?, 나 완전 저질 체력인데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구체적인 질문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하고 바로 답했다.

"부활절 방학 때 시간 있어. 그때 가자."

"콜"

카톡 끝.


4월이 되고 부활절 방학이 시작됐지만, K도 나도 여행은커녕 안부 묻는 톡조차 서로 하지 않았다.

요즘처럼 카톡으로 수십,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 카톡도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

서로 뜨문뜨문 생사만 확인하고 사는 내 친구 K와 나,




K를 만나기로 한 전날 밤,

나는 우리가 서로 얼굴을 못 알아볼까 살짝 걱정이 돼서 잠을 설쳤다.

13년 전에 한국에 발령받아 잠깐 서울에 살 때 만나고 한참 못 봤다.

싱글인 K야 그동안 외모에 뭐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한데,

침침한 내 눈이 친구를 못 찾을까 싶기도 하고,

내 모습이 변해서 친구가 나를 못 알아볼까 싶기도 하고. 설렘인지 걱정인지 밤새 뒤척거렸다.


편한 옷차림의 친구를 로비에서 만나고 카페로 자리를 잡고 앉아 마자,

내가 어젯밤 잠 설친 얘기를 하자,

"야, 너 옛날이랑 똑같애. 어떻게 내가 널 못 알아봐,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 그런지, 나는 너무 편한 마음으로 왔어." 한다.


앉자마자 집안 얘기를 시작으로 사는 얘기를 다섯 시간 동안. 먹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서 커피 한잔씩 앞에 두고 숨기지 않고 다 쏟아냈다.



지금 하는 일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묻자,

" 있어, 나 그거 하고 싶어. '애견 유치원'."

" 아, 'Pet DayCare'?"

" 아니, 그거 말고 '유치원', 1교시, 2교시, 3교시.. 체계적으로 시간표 짜서 운영하는 애견 유치원."


강아지를 많이 예뻐하는 친구이긴 하지만 대치동 입시학원에서 조기마감의 신화, 인기 강사인 친구가,

애견 유치원이라. 글쎄 뭔가 공통점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설마 애견들 놓고 영어 강의를 하는 건 아닐 테고. 그 시간표 안에는 어떤 수업이 들어가게 될까?




ㅎㅎㅎㅎㅎ 너야 말로 정말 그대로야. 변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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