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에 미친 '원조 FIRE' 사촌 형

하와이 Day 12

by 리나

하와이 여행 일정을 짜면서 처음엔 오아후에 들르지 않고 마우이와 빅아일랜드에서만 지내려했었다. 그러다 하와이 간 김에 와이키키에 이틀간 머물면서 와이켈레 아웃렛에서 쇼핑하고 가자로 계획을 바꾸었다.

여행일정과 투숙할 호텔 모두 확정한 후에 남편은 오아후에 살고 있는 사촌 형 'Burt'에게 우리 여행 일정을 알렸다.


Burt은 어쩌면 천재일 수도 남편의 말대로 평범하나 운이 좋았을 수도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환경공학 중 독물학(toxicology)을 전공하고 같이 서핑하면서 어울리던 친구들 세 명과 '독물 정화'에 관련된 스타트업 회사를 차려서 운영하다 회사를 팔아 30대 후반에 큰 돈을 벌었다. 회사가 정리된 후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로 옮겨와서 좋아하는 서핑만 수십 년 하며 사는 사람이다.

물론 결혼해서 대학 다니는 아이들 둘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모든 일정은 본인의 서핑 스케줄 위주로 돌아간다.


"Burt이 오아후까지 와서 왜 호텔에 묵냐고, 자기 집으로 오라는데?"

"싫어. 그 짠돌이네 가서 화장실 물 내릴 때도 눈치 보이면 어쩔라고."


그렇다.

Burt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의 짠돌이로 꼽는 무시무시한 짠돌이다.

돈이 없어서 못쓰는 게 아닌 본인이 쓸 필요 없다 여기는 데엔, 본인도 가족들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1 센트도 안 쓴다.


누가 한 말인지 명언이다. 그런데 남자가 RICH해도 짠돌이라면?


Burt은 하와이 서핑 시즌이 지나면 동남아시아에 와서 한두 달 서핑을 하고 간다.

서핑하기 좋은 장소만 찾다 보니 알려지지 않은 외진 곳으로 여행을 다닐 때가 많고 숙소도 마이너스 5성급 인 데에 묵기 일쑤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해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진 관광지를 여행할 때도 어디서 찾아 냈는지 싸구려 싸구려 저급한 곳에서 묵는다.

아름다운 발리에서 '화장터' 옆에 있는 민박집에서 묵었던 건 아직도 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전설적인 일이다.


오래전에 Burt와 가족들이 발리에 갔다가 싱가포르에 들렀을 때 모두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기침에 구토도 하고, 그때는 아이들도 어렸을 때였는데 다들 너무 아파 보여서 내가 근처 크리닉에 가자고 했다. 미국만큼 비싸지도 않고, 가서 의사를 만나 약을 먹든 주사를 맞든 해야지 안 그럼 다음 일정에도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Burt은 가져온 약 있다고 끝까지 병원 가기를 거부해서 우리 집에 머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언제 부터 다들 이렇게 아팠던 거냐고 물었을 때 당시 10살이었던 Burt의 딸아이 말이

"발리에서 화장터 옆에서 묵어서 그래요."

"What??"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기침을 하는 거예요."

짠돌이가 가족들을 데리고 화장터 옆에 있는 1박에 $20하는 곳에서 며칠 동안 민박을 했던 거다.


나라면 아이들 데리고 숙소를 옮겼을 거다.

남편이고 나발이고, 발리까지 가서 연기 나는 화장터에서 묵었다니. 어린애들과 함께


이런 인색한 Burt이 우리에게 자기 집에 머물라고 했다니,

'내가 싫다' 했다.

남편은 우리가 아마도 유일하게 Burt이 자기 집에서 묵어 가라 초대한 사람들일 거라 한다.

하긴 싱가포르에 오면 우리 집에 묵어가니, 당연한 거일 수도 있겠다.


우리를 픽업하러 공항에 와 준다고 까지 했단다. 헉, 그 짠돌이가?


Burt의 집은 North Shore라고도 하는 섬 북쪽에 위치한 Haleiwa 근처의 Pupukea(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이다. 집과 공항은 꽤 먼 거리다.


"우리 차는 렌트하자. 그래야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내가 렌터카로 집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자기가 굳이 온다고...그래서 차 렌트 한다고 말 못했어. 차 필요 없다고 걸어 다니라고 할 거 같기도 하고."

"으이구"


어쩌겠나.

너무 불편할 것 같은 마음이 쏴하게 들었지만 마음 약한 남편은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Thank You" 하며 우리를 픽업하는 것도 Burt의 집에서 묵는 것도 이미 "Okay"해 버렸으니.


공항에서 Burt와 와이프 Carol을 만나

차를 타려니,


ㅠㅠ 경차다.

아.. 우리는 3주치 여행 짐가방,, 총 4개를 실어야 하는데.

성인 4명+짐가방 4개


'거봐, 내가 차 렌트 하자했잖아.'

남편이 내 눈치를 본다.


'사람이건 짐이건 어떻게든 꾸겨 넣어 보자.'


짐과 사람을 욱여 넣 듯 경차를 타고 출발..

"아침 언제 먹었어? 배 안 고파?"

시간이 오후 1시쯤이니 배가 고팠다.

"응. 배고파."

"가는 길에 코스트코에 들러서 먹을 거 사 가자."

"오케이"


코스트코는 공항과 Burt의 집 중간에 있다.

'그럼 그렇지. 오가는 길에 다 들렀다 가야지. 휘발유 아까운데.'


'대망'의 코스트코


Burt는 2개 묶어 $9.99에 파는 자기가 입을 긴 티셔츠를 골라 담고

저녁으로 해 먹을 소고기와 연어를 사고,

남편이 마실 와인을 고른다.

$5.99짜리 레드 와인


남편은 얼른, 다른 와인 한 병을 집어 들고

"이게 싱가포르에서는 비싼데 여기는 값이 나쁘지 않다. 이거 마시자."

하고 눈치껏 $5.99 와인을 내려놓는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빈 손으로 왔어. 오늘 장본 거는 우리가 돈 낼께."

하며 현금을 건네줬다.

사양 한 번 안 하고 순순히 받아 주는 Burt


"여기에서 점심 먹고 가자."

????

아,, 올 게 왔구나.


유명한 코스트코 푸드코트 $1.50의 핫도그와 음료 세트


그래 먹어 주자. 배도 고픈데

마셔 주자. 세트인데


코스트코의 세트밀

다 먹고 음료 '리필'하라는 것도 잊지 않고 말해 주는 Burt


수년간 $4.99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코스트코의 Rotisserie Chicken에 대해서도 칭찬을 한다. Rotisserie Chicken


Burt의 집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 있다.

이곳에서 산지 25년 되었고 이웃들과 과일, 야채, 낚시한 생선 등을 교환하고 나누며 사는 좋은 동네이다.


이웃 사람들은 알고 보면 엄청난 부자들이다.

누구나 알만한 N스포츠 창업자, R음료 오너, 미해군 장군 출신, 정치가 등

그런데 외모만 봐서는 모두들 겸손하다.


하와이 유니폼과 같은,

반바지, 티셔츠, 슬리퍼

를 입고 신고, 자랑하지 않는 모습들을 하고 있다.


동네에 사는 루이스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102세 생일을 맞이한다며 축하의 말을 적은 커다란 카드를 만들고 혼자 사는 할머니를 위해 파티도 준비한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Burt의 집에는 과일나무와 채소를 기르는 밭이 있다.


FIRE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1.과연 내가 미치도록 매일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

2.돈은 투자하려고 있는 것이지 소비하려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절제하는 생활을 평생 할 수 있는지?


우리야 FIRE를 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지만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묻는다.

과연 우리는 미치도록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가?

얼마나 절제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