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신파新派의 경계에서

20대 시절의 단상 (10)

by Younghoo Kim
87fccc60-ce47-437d-bee9-651dd59193f6.jpg Image from 『愛天使伝説ウェディングピーチ』( 原作・原案 富田祐弘 )



요즘 며칠 동안 잠시 10대 때 봤던 영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재탕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새삼 주인공의 대사에 울컥하고 배경음악에 전율하고 플롯에 몰입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은 대부분 지금의 평가는 '닭살돋는다' '오글거린다' 식이다. 80년대와 90년대, 00년대, 10년대의 서사 패러다임은 조금씩 바뀌어 오긴 했다.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짚자면 여주인공은 좀더 능동적인 상으로 바뀌고, 남주인공은 영웅적 면모가 줄고 점차 현실적으로 변했다. 현역 군인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풀 메탈 패닉' 이라든지 얌전하게 주인공의 선택에 순응하는 수많은 미소녀 하렘물들은 이제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각자 천사와 악마의 피가 섞인 남자친구들을 데리고 있는 미소녀전사물 '웨딩 피치' 가 아닌, 여자들만으로 구성된 '프리큐어' 시리즈가 이제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BugsiTSCcAAIPMX.jpg Image from 『ふしぎ遊戯』( 原作・原案 渡瀬悠宇 )



그러나 이제는 웨딩 피치 애니메이션 마지막에서 모모코(국내번안명 피치)가 레인 데빌라 앞에서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라 외치며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은 10대든 20대든 30대든 '마른 하늘에 개가 짖는' 정도의 신파극 대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웨딩 피치는 일본에서는 95년도, 우리나라에서는 00년도 초중반까지 줄기차게 다른 더빙판으로 방영되던 작품이다. 그래서 시대의 차이에 따른 정서의 간극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95년도에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어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에서 몇 번이나 더빙 방영된 환상게임이란 작품이 있다. 역하렘 여성향 작품이면서도 화수를 거듭할수록 극적으로 치닫는 전개에 국내에서는 남학생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여주인공 미주는 그 당시에는 우유부단하지만 성장해가는 주인공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지금은 수동적인 민폐 대마왕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Air.original.jpg Image from 『AIR』( 原作・原案 麻枝准 )



천년에 걸친 남녀의 윤회와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게임 'AIR'. 이 당시 작가 마에다 쥰에 대한 평가는 한일 양국 가릴 거 없이 '본좌' 취급이었다. 반 우스갯소리로 주제가 '새의 시鳥の詩'를 국가國歌 취급할 정도였다. 넷상에서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논조를 세웠다가는 두들겨맞기 십상이었다. 오죽하면 제작사인 Key社에 목매단 놈들이란 멸칭인 카깃코鍵っ子(열쇠 빠돌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불멸의 서사도 시간의 힘은 거스를 수 없듯, 지금 게임 팬덤에서 AIR 이야기를 꺼내봤자 '할배 척추 서요?' '네 다음 틀니딱딱' 내지는 '사람 죽이지 않고는 이야기도 못 쓰는 쥰마에 ㅄ' 같은 이야기나 나올 것이다.



uyinqu3rhgs4yq493up5.jpg Image from 『광해』,『변호인』,『국제시장』Copyright by (C)CJ E&M



인정한다. 지금 와서 보면 사실 미흡한 부분이 많다. 신파新派 소리 들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10대 때는 같이 운 주제에 20대, 30대, 혹은 그 이상 세대가 되어 자신의 추억들에 그리도 냉정해지는 사람들은, 과연 '변호인' '국제시장' '택시 운전사' '광해' 등을 보면서 몇 명이나 안 울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건 처음부터 신파를 노리고 만든 영화들이다.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적절한 시대적 배경을 가져와 적절한 컷인을 구성하고 우리가 익히 하는 역사의 유명인들을 기성 배우들이 정석적으로 연기한 결과물 말이다. 공동체적 설움은 준거 사회 어딜 가든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의 요동' 을 표출하는 걸 의식적으로 건강한 현상으로 만든다.


포퓰리즘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미몽에서 깨어나란 이야기를 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감동을 쥐어짜내야 울 수 있거나, 울었다고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있는' 우리 현실이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이 나는 건 사치다. 홍루몽의 가보옥은 글줄밖에 모르는 무능력한 금수저 도령이고, 임대옥은 이미 멸종한 천연기념물이다. 적어도 '맹목적일 정도로 합리적인' 현실의 관점으로는 그렇다.


이 세대가 지나면 어느덧 또다른 패러다임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늘날의 그것보다 얼마나 '비합리' 를 허용할까. 그때는 지금보다 얼마나 '만화에 코를 훌쩍이며 현실의 냉정함을 모르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볼까.



2017.11.18

김 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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