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조가 거칠어진 과정

20대 시절의 단상 (9)

by Younghoo Kim
satirical-illustrations-addiction-technology-36__605.jpg Copyright by Kaiti Hsu (facebook)



PC통신이 막을 내리고 오늘날의 개념의 인터넷이 등장한지 슬슬 20년이 다 되어간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의 전뇌 세계는 가히 무법지대 수준이다. 물론 VT나 PC통신 시절이라고 사람들이 다들 도덕 군자였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독이 오르거나 야비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전뇌 세계는 '악의를 표현하는 데에 훨씬 주저가 없어졌다' 는 것이다. 혹자는 이걸 단순히 '익명성' 으로 퉁치지만 당장 페이스북만 해도 자기 본명과 얼굴 걸어놓고 패악질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내가 소싯적에 인터넷 세계의 의지와 접선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되도록 당시 보던 상황을 기억하는 그대로 쓰려 한다.


PC통신을 하다가 인터넷으로 넘어온 세대들은 말투가 좋게 말하면 점잖았고, 나쁘게 말하면 '참 스스로도 힘들어 보이는' 딱딱함이 있었다. 이들은 PC통신 시절 그런 말투를 익힐 수밖에 없던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당시에도 나름대로 권한에 따른 권력 구조란 게 있었고, 채널을 운영하는 시삽은 돈이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둘째, 당시는 무조건 실명제였다. 접속자들의 실명을 다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PC 보급률도 지금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시대다 보니 자연스레 폐쇄성과 경직성을 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무기는 '글' 이었다. 성별을 속인 채 이성을 꼬시기 위해서든 키보드배틀을 위해서든 의견 개진을 위해서든 소통 수단이 '텍스트' 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곳에서 뼈가 굵은 사람들이 인터넷이 생기자 옮겨왔고, 동시에 PC 보급률의 확대로 처음으로 자기 컴퓨터를 갖게 된 유소년~청소년층이 생기기 시작한다.


넷 트렌드가 점점 바뀌고 있었다. 인터넷 원주민들은 금방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터득하여 개인 계정으로 홈페이지를 만든 주인장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다만 PC통신 세대가 만든 '전뇌 세계의 룰' 이 이때까진 건재했고, 90년대 말에서 00년대 초까지 만들어진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들은 다소 빡빡한 규칙을 적용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아직까지 고급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고 해외의 정보통에 의존하고 있었던 데 있다.


시간이 흘러 접근성의 발달로 개인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진입장벽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약간의 절차만 거치면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링크 교환을 통해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인맥을 형성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즈음 PC통신 세대는 아무리 젊어봤자 20대를 넘기기 직전이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시대의 추세에서 그들은 몇몇 터전에 집중적으로 몰리게 된다.


이주민 세대와 원주민 세대간의 반목이 일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였다. IMF 때문에 전국민이 힘들 때 어느 정도 머리가 커서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알거나 지금 수준으로 취직하기 빡세던 세대와 초등학생~중학생이던 세대의 차이였다. 적극적인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이전과 이후 세대이기도 했다.


고속 인터넷의 대용량 서버 덕에 단순한 블로그라도 간단한 소스 코드, 나중에는 드래그 앤 드롭으로 그림, 동영상 등을 탑재한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img src>, <embed src>, <font color="">.. 원주민 세대는 글 하나에 저러한 멀티미디어 소스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교적 가벼운 글들을 쓰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고 기성 세대는 이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들의 시절과는 달라진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시기였는지 불만이었는지는 정확히 규정하긴 힘들겠다. 초성체나 이모티콘 등의 통신체를 원주민 세대가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 역시 고까운 시선을 보냈다.


노무현 정권이 중반을 넘어갈때쯤, 슬슬 머리가 깨인 원주민 세대들은 기성 세대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언론과 야당이 정권을 두들겨대는 추세가 가열차던 때였다. 인터넷에 힘입어 거물 이회창을 꺾고 출범한 노무현 정권이 인터넷을 이용한 십자포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터넷의 주류인 청년 세대 이하는 김대중-노무현의 진보계열 지지층이 두터웠다. 그러나 원주민 세대는 서서히 보게 된 것이다. 이주민 세대들은 말은 청산유수지 하는 짓은 자신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진보를 지지한다는 인간들이 정작 현실에 맥없이 순응하며 사는 것을.


이들은 점차 자신들의 사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우선 넷상에서 보다 거침없는 말투를 쓰기 시작한다. 괜히 닉네임 쓰는 인터넷에서 점잔빼봤자 어차피 가식일 뿐이고 '현실에 득 될 게 없다' 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이게 '익명성' 을 메피스토펠레스의 과실마냥 취급하기 시작한 계기이다. "현실에서 잘 나가고 돈 빵빵하게 벌면 되지 인터넷에서 신사인 척 하는 게 중허냐?" 는 메세지가 팽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전뇌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그 파장을 무시할 수 없는 디시인사이드, 오늘의유머 등의 사이트가 생기게 된다. 오늘의유머의 주류층은 이제서야 슬슬 인터넷을 시작해보는 사회인 계층이나 PC통신과 인터넷의 경계 세대 중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인터넷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었다. 한편 디시인사이드는 철저히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청년층들이 들어차 빠르게 세를 확장해갔다.


초기 디시인사이드의 암묵적인 룰 몇 가지를 들자면 '기본적으로 반말' '글을 길게 쓰는 걸 지양' '실제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횽' 으로 퉁친다' 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한 것은 "바깥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조차 서로 성향이 다른데 중간에 완충재가 없으면 충돌하기 쉽건만 보더라인 같은 거 없는 넷에서는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넷 문화는 '마쵸성' '병맛' 등의 이미지로 굳어져갔다. 그들은 '오늘의유머' 를 두고 '가식이나 떠는 아니꼬운 놈들' 로 보았다. 그즈음 나온 표현이 '씹선비' 였다. (그들 관점에선)어차피 현실에서는 도긴개긴인 놈들이 키보드 앞에서는 엣헴 하고 거드름 피우는 게 조선시대 유생과 다를 바 없단 것이었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에서 조회수가 높은 글들을 따로 모을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느껴 별도로 만들어진 사이트가 0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말 많고 탈 많은 '일간베스트', 줄여서 '일베' 다. 이들은 절대 처음부터 지금의 반사회, 반골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다만 디시인사이드의 소위 '병맛' 중 엑기스를 모아놓은 곳에 모일만한 사람들이라면 몇몇 계기로 반사회성을 띠는 건 충분했을 뿐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다들 아시다시피 故노무현 씨에 대한 사자모욕. 현실 세계애서 그들이 '일베' 의 이름으로 자행한 사건도 물론 여럿 되지만 한국에서 노무현 씨의 이름이 가진 상징성이 무소불위의 수준인만큼 그를 희화화한 일베는 특히 기성 세대들에게 '근절해야 할 사회악' 으로 찍히게 된다.


한편 일반 인터넷 유저들은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거쳐 SNS 등의 사회소통망 서비스가 하나둘 등장함에 따라 너도나도 가입하게 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등장했을 때, 또다시 판도가 변화한다. 트위터는 서비스가 확장됨에 따라 140자 제한에 동시성이 특화된 플랫폼으로서 비교적 젊은층과 그들과의 소통이나 홍보효과를 노리던 기성 지식인 몇몇이나 기업계정이 들어서고, 페이스북은 기존에 싸이월드와 네이트온메신저를 쓰던 strong link 위주의 사람들이 대거 이주한다. 여기서 또다시 지향점이 갈리게 된다. 페이스북은 장문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주로 사진 몇 장과 함께 짦은 근황을 올리는 용도로 쓴다. 한편 트위터는 되도록 140자 안에서 하고픈 말을 축약해야 했다. 멀티미디어를 링크할 경우 제한숫자가 더욱 줄어들었다. 문단이 길어 연속트윗을 작성하면 글의 흐름도 일관적으로 유지하기 힘들고 구독자들이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페이스북 시스템과 유저가 트위터 터줏대감들의 공격을 받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인터넷 원주민이 비난받던 이유와 정반대였다. strong link의 연계와 상업적 도구로서 페이스북이 고착되자 "자기 과시하고 싶은 리얼충(リア充, 외모가 반듯하고, 학벌이나 직장이 번듯하고, 잘난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등 현세적 가치를 손에 쥔 '가진 자' 를 일컫는 말)놈들의 터전" 이란 비난을 듣게 된 것이다. 서민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되던 시기였다. '금수저 흙수저'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기 얼마 전이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 전반적으로 자존감을 상실하고 기성 사회에 대한 독이 차오른 인터넷의 청년들은 서서히 노골적으로 적의를 표출하게 된다.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청년 세대의 보수성' 은 이때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젠 말만 잘하는 '씹선비' 뿐 아니라 세상 행복하게 사는 거 과시하는 '따봉충' 들이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그들 간에도 치열한 소요와 분쟁을 야기한다. 위에서 말한 '일베' 프레임 씌우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상대에게 어떻게든 낙인을 만들어버리면 자긴 그 위에서 '더 떳떳한 입장' 이란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원래 다른 페르소나다' 같은 순진한 소리를 하기에는 인터넷의 규모와 접근성은 PC통신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터넷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실명이든 익명이든 곧 세상의 목소리며,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위해 새로이 받든 '구글' 신은 옹립된 최고존재자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울리는 목소리가 세상의 목소리일지언정 세상 전체의 목소리가 아닌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구글' 신에 얽매여 세상이라는 존재를 망각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즉 타자와 공감해야 한다. 『감옥의 역사』에서 푸코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동일한 곳을 바라보지 않고, 한쪽이 특별한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타자를 바라볼 때 시선에 의한 지배 권력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시선, 혹은 그와 유사한 방식의 강제가 아닌 스스로의 자발성과 공감에 입각해서야 민주주의적인 쌍방향성의 권력이 탄생할 수 있다.


이런 글을 정작 인터넷에서 쓰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글은 글의 역할이 있다. 이성은 이성의 역할이 있다. 이성 앞에 있는 신체나 정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제 바통은 넘겨졌다.



2017.05.17

김 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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