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와 공권력의 탄압

20대 시절의 단상 (8)

by Younghoo Kim
unnamed (3).jpg Image from 경향게임즈 ( http://www.khgames.co.kr )



한국 만화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한글 신문이 생길 때부터 실리던 만평부터 시작하여 ‘임꺽정’ ‘고우영 삼국지’ 등의 故고우영 화백, ‘둘리’ 의 김수정 작가, 허영만 작가 등 군사독재 시절 무자비한 문화 검열을 겪은 세대를 거쳐 팔구십년대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황미나 작가, 원수연 작가, 그리고 청보법을 비롯한 정부와 학부모단체 주도의 갖은 탄압의 시대 속에서 스러져 간 90-00년대 작가들, 그리고 웹툰이란 플랫폼으로 서서히 독자적인 한국 만화의 양식을 되살리려는 현 세대들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청보법 시대부터 지금까지 국가가 만화/게임을 위시한 청소년 문화를 탄압한 것에 대해 살짝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90년대 중후반, 한국 만화계는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세대교체가 되며 화풍이나 메시지도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히트한 작품으로는 청소년층의 이야기를 다룬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굿모닝 티쳐’ 등이 있었다. ‘굿모닝 티쳐’를 잠깐 소개하자면 주인공 ‘영민’ 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담임이자 체육 선생을 짝사랑하게 되는 학창시절 이야기-는 겉절이고 작품 내에서는 수시로 당시 경직된 공교육의 세태에 대해 비난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당시 발간되던 ‘학원장르물’ 중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다.


97년, 기존의 미성년자보호법을 개정한 ‘청소년보호법’ 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학원폭력에 정부가 대처하고자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를 전격 검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비단 만화계뿐 아니라 당시 문화계 전반을 강타한 칼바람에 여러 기성 작가들이 기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수많은 작품들이 회수되기까지 한다. 이미 97년 이전에 검열을 통과한 작품들까지 다시 먼지 털 듯 털어내어 갖은 이유를 붙여 발간을 금지시킨 사건이었다. 창작자나 주 소비층인 청소년과의 논의도 없이 한국 만화계는 그렇게 맥없이 주저앉았다.


한일 문화개방에 때맞춰 일본 만화들이 다량 수입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칼럼니스트이자 現만화전문회사 ‘코믹팝’ 의 대표 선정우 씨는 실력있는 기성/신예 작가를 발굴하여 일본에 진출시키기 시작했다. 그밖에도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출생의 신예들 중 자력으로 일본에 데뷔하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었고, 몇몇은 성공하여 현재 일본에서 프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image_readtop_2019_328114_15582543623754911.jpg Image from 매일경제 ( https://www.mk.co.kr )



게임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한국 게임개발 1세대는 전편에서 말한 ‘오타쿠’ 1세대와 상당 부분 겹친다. 한국 최초의 MUD게임 ‘바람의 나라’ 를 만든 넥슨의 설립자이자 반년 전 진경준 검사장 뇌물증여 혐의로 최순실 게이트에도 어느 정도 연루된 김정주 회장, 한국 인터넷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만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회장, 마비노기, 킹덤언더파이어 등 여러 게임의 제작을 감독한 김용하 PD 등.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8비트 시절부터 독창적인 게임을 만드는 수많은 인디게임 제작자들도 있다.


90년대는 소프트맥스, 손노리 등의 게임회사들이 여러 1인용 PC게임들을 만들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도 컨슈머(1인용 PC 소프트) 내수 게임이 굳건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명맥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흔히들 ‘불법 다운로드’를 가장 큰 이유로 든다. 그러나 고속인터넷 시대에 불법 다운로더가 한국에만 기승을 부린 것도 아니건만 PC용 패키지 게임 시장이 망할 수밖에 없던 건 결국 그만큼 청소년의 오락 문화를 박해하던 사회 분위기가 맞물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IMF 시대였다. 전국적으로 집 기둥이 흔들리는 판에 청소년의 오락 문화를 기성세대가 이해할 리 만무했고, 예측할 수 없는 입시제도의 번복과 입시형 사교육의 기승 등이 가열차게 청소년들의 숨통을 죄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굳이 돈을 내지 않아도 캐릭터를 육성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시장이 한창 본궤도에 오를 무렵, 2010년도부터 헌정 희대의 세금 먹는 하마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인 2011년, 10명의 한나라당 의원과 2명의 통합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14명의 국회의원이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법률’ 소위 ‘아청법’의 개정안을 발의하며 97년의 악몽을 재현하게 된다.


밤시간 이후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 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더 험악한 형태인 ‘손인춘법’ 으로 개정되었다. 골자는 만 16세 미만을 차단하던 것을 만 19세 미만 차단으로 개정하고, 게임을 출시할 때 ‘인터넷중독유발지수 검사’를 받게 하고, 게임회사가 담임과 보호자에게 해당 유저의 사용시간을 통보하라는 것이다. 현업자들과 유저들의 불만이 쌓여갈 무렵 위에서 언급한 ‘넥슨 게이트’ 가 터졌다. 대한민국 최대 게임회사의 회장이 검사장에게 뇌물을 증여했다는 혐의로 넥슨 본사가 검찰수사까지 받은 것이다. 넥슨이 한국 게임계에 가진 상징성이 어마어마했던만큼 팬덤과 종사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다.


‘아청법’ 중 미디어에 대한 사항은, 미성년자의 부적절한 언행(단적으로 말해 성적 리비도가 함유된 모든 사항)이나 부적절한 복장이 포함된 미디어를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사람을 적발하여 형사처벌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처음에는 기존의 음란물 배포죄에 해당하는 ‘야동’ 공유자 적발의 연장 정도로 여겨졌으나 개정된 아청법은 점차 만화, 게임 등의 ‘가상’ 컨텐츠에까지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배꼽티를 입은 캐릭터가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는 건 양반이었다. 정말 별 황당한 이유를 들어 동인 시장의 팬만화를 비롯하여 정규 국산 컨텐츠까지 가위질했다. 정작 웃긴 건 20년째 10대 청소년이 진한 화장을 하고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춤사위를 펼치는 데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청법 관련으로 헌재의 한 재판관이 ‘실제 청소년의 선정적인 의상보다 가상 컨텐츠를 빙자한 캐릭터의 선정적인 묘사가 더 문제’ 라며 결정적으로 책상머리 기성 세대들의 잣대라는 인증을 해 버렸다.



이렇듯 나의 유년기부터 20대까지 한국 서브컬쳐 산업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니, 정말 용케 지금까지 이끌어 온 게 용할 정도이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3년제 전문대학이자 현재 우리나라 서브컬쳐 업계인들의 대표 산실인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모 교수님과 온라인상에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브컬쳐계에서 번역을 하고 싶어서 전적 대학에 들어갔단 말씀을 드렸더니 “아니 왜 그런 좋은 대학을 가서...” 라고 하셨다. 과연 거기가 좋은 대학이었는지는 지금도 물음표를 띄우고 살고 있긴 한데 내 입장에선 오히려 청강대학교의 학생들이 훨씬 개인의 독창성을 갈고닦을 수 있어 부러웠기도 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가 찍은 ‘딴따라’ ‘환쟁이’ 의 낙인에서 그들 자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다.


청강대 만화창작학과와 게임학과는 내실로나 동문으로나 어느새 세종대, 상명대 등 웬만한 문화특화형 4년제 인서울 사립대 위에 섰다. 그러나 그 인재들이 졸업하면 이 땅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며 직인으로 살아가기가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란 말도 있듯, 비범한 시대인만큼 어떻게든 비범한 인재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미 그 싹수가 보이는 몇몇 신예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귀한 손끝을 이 무정한 사회가 꺾어버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17.05.08

김 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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