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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Aug 24. 2023

동물을 기르지 않는 삶에 대해

Snoot 7-8월

'다마고치'라는 게임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달걀 모양의 게임기 안에 흑백 픽셀로 이뤄진 존재가 있는데 걔 이름이 다마고치다. 그 존재는 밥을 먹이고, 똥을 치워주고, 주기적으로 놀아줘야만 게임기 안에서 살 수 있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이 다마고치란 이름의 폴리곤은 하루 이틀새에 죽어버리곤 했는데, 그건 "게임오버"라는 폴리곤의 죽음을 명명하는 개념보다 일종의 이별에 더 가까웠다.


나는 내 부주의 때문에 어떤 존재가 죽는다는 죄책감과 주기적으로 돌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다마고치에 크게 열광할 수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주기적으로 다른 종류의 다마고치들을 쓸어가던 초등학생들을 떠올리면 생긴 것이 귀엽지도 않고, 밥 몇끼 거른다고 죽어버리는 가상의 존재를, 그럼에도 애지중지하는 인간 종의 연민이 차라리 궁금해진다.


야생의 짐승들과 달리 생존 비기가 없는 동물들은 집 안에서 늘 우리 손길을 기다린다. 하는 일이라곤 우리가 부어주는 사료를 먹고, 싫다고 몸부림 치며 병원에 끌려 다니고, 목줄에 매여 산책을 하거나 낚싯대 모양의 장난감을 잡으려고 날뛰는 것뿐인데도 세상을 다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은 무엇일까. 내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작고 연약한 생명이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애정의 현신 같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돌봄에 대해 고민할 때면 나는 아직도 다마고치를 떠올린다. 완전한 책임에 대한 강박은 더 커다란 사랑의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벽일까? '포인핸드' 어플의 입양공고에는 철창 속에 웅크려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물들 사진이, 매일 수도없이 올라온다. 저 중 한 마리라도 내가 구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 다마고치 똥도 제 시간에 못 치우던 내가, 무슨 구제야?하는 회의감에 입맛만 쩝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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