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이번 주(2020년 3월을 뜻한다..) 우리의 글짓기 주제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독서 후 독후감 쓰기였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두 명 다 독후감을 업로드 하지 않았다. 독후감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이 책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할 거면 이 시간에 독후감을 쓸 수 있지 않았겠냐는 김수지(이하 김)의 의견에 유ㅇㅇ(이하 유)이 동의함으로써, 책에 대해 나눈 메신저 대화를 두 명의 대담 형식으로 정리 했다.
김 : 난 그 단편이 제일 웃겼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유 : 마지막에 지훈이 울면서 핸드폰 던지는 대목에선 정말 ‘가지가지 한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
김 : 그리고 할머니 커피컵에 동전 던지는 장면도…. 정말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자의식의 대폭발이라 할 수 있다. 그 단편의 주제의식이 인터넷에서 유명한 밈 중 하나인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 찾자” 그 자체다.
유 :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이 전반적으로 다 그런 주제 의식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결국 다들 자기들 기준에 맞춰서 세상을 재단한다는 내용.
김 : <도움의 손길>의 화자도 그렇다. 그 가사도우미에게 취하는 태도가 전형적인 젊은 중산층의 그것인데, 한눈에 보이는 그 속물적 게급 의식에 미간이 찌푸려지는데 동시에 ‘나보다 낮은 계급으로 간주되는 누군가를 대할 때의 어쩔 줄 모름’이라는 감정을 내가 느껴본 적이 있기에 마음껏 비난할 수가 없었다.
유: 그게 결국 나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도움을 찾는 것인데 자신이 상대를 배려를 해준다는, 한발짝 양보해 준다는 그 태도가 비웃게 되는 지점인 것 같다.
김 : 맞다. 누구에게나 편견없이 친절하고 사려깊은 자신의 겉모습은 유지하고 싶지만 자신의 요구에 따라야 할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 느끼는 그 묘한 배신감이자 불쾌감.
유 : 그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해 버리니까.
김 : 그 점이 화자를 당황하게 한 것 같다. 정작 가사도우미 자신은 허드렛일을 대신 해주는 하급 신분이란 자의식이 전혀 없고 그저 적게 일하고 많이 받을 수 있다면 그만인 계약 관계로 생각했다는 점.
유 : 그 화자도 처음부터 대등한 계약 관계로 생각했으면 불편한 점에 대해 당당하게 컴플레인 걸고 집안일 결과물에 따라 일당 금액도 반박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연민을 느끼는 것처럼 시혜적 태도를 취하니 입장이 이상해진 거다.
김 : 맞다. 그리고 읽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은근히 시혜적 입장을 취하다 ‘생각보다 내가 우위가 아니잖아'라고 뒤통수 맞는 느낌이 뭔지 알게,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 보도록 작가가 묘사를 진짜 잘한다.
유 :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출근길>에도 그런 세부적 묘사가 잘 돼 있다. 주인공이 실수령을 얼마 받고, 생활비, 저금, 통신비를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고 그런 내용들.
김 :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유 : 주변에 실제로 한 두명 씩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평가하든 상관없이 잘 산다.
김 : 그리고 생각이 많고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나이브한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 섞인 분노도 되게 정확하게 묘사했다. 나이브한 사람이 모르는 것들을 알려주며 자신이 우월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흡족해 했다가, 자신이 아는 걸 모르는 그 사람과 자신의 삶에 결과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그 분노.
유 : 빛나가 12000원에 맞춘 선물 사진을 프로필로 해 놓았을 때 느낀 그 분노가 진짜 화룡정점이다.
김 : 작가가 사람의 심리에 대해 정말 기막히게 묘사한다 느꼈던 점이 또,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오히려 여자가 남자와 잘 해 볼 마음이 있었다는 걸 내비쳐준 점이다. 아니, 잘 해 보려했다기 보다, ‘괜찮으면 그냥 한 번 해 보려’ 했던 그 마음. 혼자 처음부터 소설 써 나가는 남자들도 많지만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길길이 날뛰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 아닌가. ‘자기도 동의 해 놓고 갑자기 왜 그래’ 라는 지점.
유 : 난 그 부분이 조금 헷갈렸다. 결국 지유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던 건 맞나?
김 :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훈하고 다시 연락이 닿고 일본에서 합류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 때까진 지훈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한 번 자 볼 생각이든 그저 말동무나 할 생각이든 지훈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동행한 거지.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며칠을 같이 보내면서 완전히 식은거다. 지훈이 느꼈던 무언가 잘 돼 간다는 촉 자체가 상상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중간에 변한 상황에 대해 지훈은 끝까지 조금도 눈치를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비참함을 느낀거다.
유 : 그런데 정말 그 화나는 마음이 핸드폰을 던지면서 눈물을 터트릴 정도일까.
김 : 지훈은 자기가 직접 일본까지 갔으니 한두 푼 쓴 것이 아니라서 그랬겠지.
유 : 그리고 혼탕 들어가기 전에 푸시업 하는 장면에서 진짜 할 말을 잃었다.
김 : 그거랑, 사보에 영화 관련 글 기고 했다는 내용이랑, 사보 모델 했다고 스스로 묘사하는 대목도. “예술 영화도 괜찮죠?”에서 나도 거의 책 집어 던지면서 웃었다.
유 : 지훈의 생김새까지 상상 된다. 그리고 자꾸 자기가 성숙한 어른이라서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지유가 결혼할 때까지 못 잡은 것처럼 말하는 것도 웃긴다.
김 : 전혀 지유의 ‘어장'에조차 안 들어가 있었을텐데.
유 : 여자가 여지를 준다는 개념이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 : 여지를 줬으면서 자기를 갖고 놀았다는 말이 웃긴게, 그럼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데 그냥 아무나 점 찍고서 한 번 정했으니 그대로 쭉 가나? 사람이 사람에 대해 호감을 느낀 단계에서 더 자세히 알아 보려고 하는게 당연하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스톱’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잘못인가?
유 : 여지를 준 적도 없는데 줬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김 : 맞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여자가 먼저 여지를 준 거라고 쳐도, 말했듯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는거지, 자신을 농락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면 세상의 모든 남녀 관계는 ‘남녀칠세부동석’이이어야 하고 결혼할 사이 아닌데 남자랑 여자가 대면할 일 있으면 무조건 사이에 발 쳐놓고 대화해야 한다.
유 : 진짜 웃기다. 저런 사람은 동성끼리는 어떻게 대화하나 모르겠다. 지유도 말하지 않나, “우리가 대화가 잘 통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김 : “그냥 제가 말을 잘하는게 아닐까요?”
유 : 그리고 <일의 기쁨과 슬픔>은 완전히 판교에 출퇴근 하는 사람이 쓴 일기다. 그래서 웃긴데 웃음 끝이 쓰다.
김 : “제니퍼는 디자이너인데 한국 사람이다.” 같은 문장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케빈이 면접에서 사회성을 어필하려고 카이스트에서 레고 동아리 총무 했단 이야기 할 때도.
유 : 그래서 소설에서 전반적으로 상대적으로 기민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김 : 맞다. 회사 생활에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기민하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더 짜증이나 화가 날 상황이 훨씬 많은 건 사실이다. "카이스트에서 레고 동아리 총무를 했다는 문장의 단 한 부분도 외향적이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말에 담긴 시니컬함을 이해하려면 어쨌든 평범한 기준보다는 더 예민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유 : 엔씨 소프트 앞에 있는 '길을 건너지 못하는 다리' 조형물 같은 것도 그렇다.
김 : 나도 처음 판교에 와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점이 그 다리였다. 분명 다리 모양이고, 사람이 걸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게 양쪽에 계단까지 있는데, 그 다리를 올랐다 내려와도 그 어디로도 건너지 못한다.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잘못 지어진 평범한 다리일 수 있지만 유심히 보면 볼수록 앞으로의 내 판교 회사 생활을 상징하는 어떤 알레고리 같이 느껴졌다.
유 : 우리가 이렇게 채팅하며 매일 회사 생활의 뭣 같은 부분에 대해 토로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게 그거다. 케빈이나 지훈 같은 애들 모두 뭐가 어찌됐건 자기 기준대로 편히 잘 산다.
김 : 우리 눈에는 그런데 막상 그들에게 ‘넌 모든 걸 너 편한대로 생각하잖아’라고 하면 아니라고 길길이 날뛸 걸? 자신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다방면의 사고를 하며 사는지 아느냐고 할 거다. 그리고 자신은 정말 진심으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을 거다.
유 : 우리도 사실은 그런 사람들인걸까.
김 : 설령 맞아도 우리 스스로는 절대 모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