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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Aug 22. 2023

2. 파악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나의 적은, 나의 미래를 이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만든 도적같은 이는 다름아닌 바로 나였다. 남은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할 상대가 나밖에 없으므로 반이나 할 일이 줄어든 셈이니, 꽤 승산있는 전투가 될 수 있을 터였다.  




1.

먼저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나의 외면부터 분석해 보기로 했다. 거울 앞으로 가 마주본 나의 얼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헤어스타일은 단발로 잘랐던 머리가 자라 일명 거지존에 봉착해 있었다. 음.. 어중간한 길이군. 그리고 키는 163.5(소중한 쩜오) 그리고 몸무게는 53kg. 키가 크다고도 작다고도 할 수 없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하기에도, 적게 나간다고 하기에도 말하기 어려운 이 어중간함. 발 사이즈는 240에서 245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243정도에 발볼은 또 넓은 편이다. 이 어중간한 발의 형태 때문에 신발은 꼭 신어보고 사는 편이라 해외에서만 출시되는 제품은 후기란 후기는 죄다 찾아서 읽어 보고 제발 이 발에 맞아주기를 기도하며 주문하곤 한다.


생각해 보니 심지어 곧 수술을 앞둔 이 허리의 상태 또한 어중간하기 그지 없었는데, 나의 허리 디스크는 4번과 5번 사이가 찢어져 있다. 터지지는 않고 찢어져서 디스크 안쪽에 균열이 일어나, 걷는 게 아예 불가능하진 않지만 심할 땐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 터진 사람만큼이나 고통은 느끼지만 수술보다는 시술을 더 권유받기도 하고, 또 어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어중간한 상태였다.


2.

이런 내 인생의 어중간함은 외모나 몸 상태만이 아니라 나의 내면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늘 취미라고 말하던 영화도 어중간하게 좋아하고 있었으니.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던 배우의 이름이 로버트 드니로라는 사실을, 그가 등장한 약 7번째 영화를 보다가(심지어 인턴은 거의 30번을 족히 봤다) 이름을 검색해 봤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꽤 충격을 받았다. 


좀 더 솔직히 적어보자면, 사실 로버트 드니로 외에도 나는 그때까지 로빈 윌리암스도, 크리스찬 베일도, 심지어는 해리포터의 광팬임을 자처하면서 조니 뎁의 얼굴 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평소 취미가 무엇이냐, 는 물음에 항상 영화 감상은 빠지지 않았건만. 나는 진정 영화를 좋아했던 게 맞는 걸까. 그저 유명한 영화라는 겉모습 때문에 봤거나, 혹은 내 정신을 잠시 피난시킬 도피처로써 영화를 대한 건 아니었을까.

그후 나는 내가 좋아했던 영화 속 배우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그들의 필모 중 내가 본 작품을 되짚었는데, 그들 중 서너 명이 함께 나온 영화의 발견은 꽤나 충격이었다. 


이런 문제는 나의 다른 취미인 음악이나 요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대표적 취미일 만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깊지 않은 상태의 흥미.


3.

이런 어중간한 깊이의 관심은 나 스스로에 대한 관심의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예뻐 보이고 좋아보이는 건 따라하고 싶은데, 나 자신에 대해서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어떤 스타일의 옷이 어울리는지 어렴풋하게는 알지만, 어떤 색깔이, 어느 정도의 사이즈가 정확히 들어맞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고. 그리하여 살 땐 의기양양했던 옷들이 집에 가서 다시 입어보면 방금 전의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리하여 한두 번 입고 당근에 올리게 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feat. 

궁금했다. 살며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경험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러나 나는 과연 제대로 경험하며 살고 있었던 것일까. 삶의 모든 경험의 궁극적 목적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함일텐데, 나는 과연 나 자신과 함께 잘 살아오고 있던 것이었을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이토록 잘 알지 못한다면, 나는 세상을 잘 살아오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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