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관계론은 육아에서 '관계'에 집중한다.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유익한 관계는 부모, 자녀 모두 가정 안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서로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힘을 제공한다. 가정에서 얻어진 훌륭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녀가 꿈을 꾸도록 도우며 미래에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바른 가치관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좋은 관계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는 보다 자녀를 적극적으로 양육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길 위한 그러한 방법이나 이론들에 관심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육아 관계론을 가정에 적용하며 균형 잡힌 가족 간의 관계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딸을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양한 육아책을 찾아보고 인간의 뇌와 의식의 발생에 대해서도 공부해 봤지만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사유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좋은 부모가 더 나은 자녀를 기를 수 있도록 도우는 새로운 방법론 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회에서는 각 개인을 위해 줄을 세우기 위해 '평가'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험의 형태로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행해진다. 아이들과 부모는 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사교육을 하고 공부 방법을 고민하여 평가에 임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가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평가는 대부분 특정 정보를 아는가 모르는가?로 이루어진다. 수식을 알고 적용할 수 있는 아이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구석기시대의 토기가 어떤 것인지 아는 아이는 역사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이야기한다. 평가는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제공한다. 이런 평가에서 고득점을 위해선 사교육과 주입식 교육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에서는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을 심층적으로 알기에는 시간도 인력도 분석 도구도 부족하다. 결국 사회는 대규모의 아이들의 역량을 표층적으로 알아낼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시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아이는 자격증을 따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형태로 사회는 이루어진다. 하지만 평가라는 척도는 한계를 지닌다. 그것은 아이들의 지식수준과 같은 보이는 것을 측정하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덕목들을 사회에서 측정하지 않기에 그것들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 번의 평가가 삶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바꾼다. 그렇기에 부모와 자녀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5세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수학 사교육을 받으면 추후 있을 평가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게 되는 것은 무척 당연스럽다. 유치원생 아이들이 이미 주입식 교육과 함께 오랜 기간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며 집에서도 영어, 수학 숙제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일부 부유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문화는 이전에 그러하듯 점점 더 아래 계층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립기관을 다니며 이런 '평가'를 받고 익숙해진다. 평가를 잘 받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인정받는 것이 현 시스템이다. 좋은 명문대를 보낸 부모는 부모들 모임에서 가슴을 펴고 큰소리 칠 수 있다. 그렇기에 각 가정에서도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목표로 교육한다.
가정에서는 이전부터 삶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을 가르쳤다. 자녀가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사실과 가장 기본이 되는 도덕심과 타인과 관계를 맺는 법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이러한 항목들만 가르쳐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진다고 한다. 나는 전통적인 가정에서의 교육 외에 지속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위해 어떤 부분들을 자극하고 가르쳐야 할지 생각한다. 그것은 평가 그 아래에 있는 지식의 유무가 아닌 역량이다. 정보의 형태로 배우는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육체를 조절하는 법에 관한 것이며 타인과 적절하게 소통하며 감정을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이 있기 이전, 역사 그 아래 원시 사회에서조차 존재하고 있던 인간 삶에 근본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각 뇌에 새겨져 있고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나는 그러한 능력을 언어를 통해 다섯 가지 요소로 분류했다.
1. 인지(추상적 사고, 인내, 추론, 이성적 판단) - 전두엽
2. 운동 - 운동피질, 감각 피질, 소뇌, 기저핵
3. 언어 - 측두엽, 전두엽
4. 감정 - 변연계
5. 사회성 - 이마엽, 전두엽
위의 분류에서 인지적 역할을 전두엽으로 분류했지만 인지를 오직 전두엽이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뇌의 모든 부분을 아는 것이 아니기에, 언어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 역시 한계가 있기에 보다 단순화하여 다섯 가지 뇌의 영역과 그 역할들로 나누었다.
예를 들면 기억을 변연계의 영역으로 분류하였지만 기억을 보다 세분화하면 장기 기억, 단기 기억, 작업 기억 등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분화하고 정확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면 결국 내 글은 뇌과학 책이 되어 버릴 것이다. 추후 각론에서 각 역할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독자에게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뇌의 역할에 대해서는 과감히 생략한 부분도 적지 않다. 뇌를 다섯 가지의 요소로 나눈 분류체계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기능적 분류는 결코 진리가 아니며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녀를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인지, 운동, 감정, 언어, 감정, 사회성은 언어적으로 확연히 나뉜 영역으로 보이지만 뇌 안에서는 무수히 교통하고 있다. 각 영역은 그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다양한 시냅스와 신호 전달물질에 의해 교류하고 영향받기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언어와 사회성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정의되지만 연결성 안에서 보면 뛰어난 언어 능력은 좋은 사회성으로 이어지고 높은 사회성은 뛰어난 언어 발달로 이어진다.
유난히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모르는 아이들과도 곧장 잘 어울리는 아들이 있다고 하자. 그 아들은 사회성의 단계가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어째서 낯선 아이들에게도 곧장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어울리는지 생각해 보면 자녀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타인에 대해 호기심이 훨씬 많을 수 있다. 경계심보다 호기심이 더 많을 때 인간은 탐색 활동을 시작한다. 아니면 단지 모르는 아이와 노는 법을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학습했을 수도 있다. 물론 유전적으로 사교적이고 활발한 아이일 수도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에 그런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외롭게 혼자 노는 아이가 있다면 말을 걸어 외로움을 함께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다른 또래와 노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자녀가 있을 수도 있다. 부모와 같이 놀려고만 하고 친구와 노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 내 아이가 친구와 노는 것을 꺼려하는지 고민하고 원인을 찾아 교정할 수 있다. 애착이나 안전감의 문제라면 곁에 엄마가 있어주고 점진적으로 친구와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다. 안전하다는 이야기와 스킨십으로 아이에게 충분한 안전감을 더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일단 친구와 노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그 뒤에 노는 것은 더 쉬워진다.
자녀를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관찰하면 자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자녀의 성향에 대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한다. 마찬가지에서 다른 영역에서 자녀를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내 자녀가 지금 부족한 역량은 어떤 부분이며 부모는 부족함을 메꾸거나 뛰어난 부분을 강화시켜 주기 위해 다양한 육아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그전에 우린 이런 영역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그 의미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아야 한다. 이어지는 글은 그러한 내용의 정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