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안다고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뱀을 보고 느끼는 본능적 거부감과 혐오감에 대해 우리는 이런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질만능적인 사고로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명쾌하지 않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누구나 이야기할 법한 평범한 답변밖에 하지 못한다. 범용적인 것이 진리인 것인 양 쉽게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철학자였다. 사춘기 시절 나는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했었고 철학자가 그러한 정답을 알려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때 철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꾼 적이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 본격적인 철학책을 집어 들고 읽으려 했을 때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어 좌절했었던 기억이 난다. 철학자에 대한 꿈은 접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는 성장했다.
의대와 전공의 시절을 끝내고 군의관으로 부임해 처음으로 나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딸을 돌보고 함께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와 놀아주기란 무척 어렵지만 딸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놀면서 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커져갔다. 딸을 사랑하니 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이다. 본격적으로 딸을 양육하며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육아와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 보통 놀라운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전공한 재활의학과는 소아 재활 파트가 있고 뇌에 대한 질병에 대해 주로 다루기 때문에 뇌의 생물학적 기초 지식은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인간의 초기 태어났을 때의 스펙은 굉장히 낮다. 모든 것을 의존적인 상태이며 자신의 몸을 전혀 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몇 가지 단순한 생존을 위한 반사만 있을 뿐 지구에 번성한 인간의 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신생아기에 가장 우선시 되는 과제는 육체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동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 부지런히 이동하는 연습을 한다. 배를 밀어서 이동하기도 하며 기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그리고 결국 걸을 수 있게 된다.
육체를 조절하는 것과 탐색 행위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동시에 발달한다. 초기의 탐색 도구는 입이다. 수 없이 빨고 핥으며 맛을 보며 탐색 대상을 탐구한다. 손의 기능이 점차 강해지며 손을 이용해 탐색하게 되며 탐색의 방법이 다양해진다. 물건을 던지거나 흔들거나 촉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났기에 기본적인 물리학적 규칙을 뉴턴처럼 열심히 경험을 축적하며 익혀나간다. 아마 이 시기에 사과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아직은 동물적인 요소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욕구의 충족을 우선시한다.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모르며 규칙의 존재 이유도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사회적 교류를 하기에 부족하다.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아이들은 진정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욕구의 통제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규칙의 필요성도 모르기 때문에 감정적인 훈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3~4세가 되면 아이들의 전두엽이 발달하고 사회성이 커지며 인간 적인 모습이 부쩍 성숙한다. 여전히 욕구에 휘둘리는 존재지만 규칙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교육할 수 있다. 지나친 금제는 탐색을 제한하여 발달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아이들은 욕구의 충족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통제 사이에서 고뇌하고 싸운다. 때론 욕구가 이기기도 하고 때론 절제가 승리하기도 한다. 부모는 이 시기에 욕구와 애정을 충족시키는 육아에서 칭찬과 언어로 아이의 좋은 점을 강화시키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양육으로 양육법이 바뀌어야 한다. 이때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이기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이 과정은 아이가 세계관을 가지고 독립성을 지닐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아이들은 자라나며 가정과 사회를 통해 동물적인 존재에서 보다 문명적이고 인간적인 존재로 변해 간다. 이 시기에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절대적이다. 아이의 성장을 관찰하면 인간이 어떻게 인간적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지에 대한 생각의 파편들을 얻을 수 있다. 이 파편들을 사유를 통해 보다 체계화시키면 이것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개개인의 어른들을 만난다. 우리 자신과 너무나 다른 타인은 때론 이해 불가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컴퓨터를 보면 그러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CPU와 메모리와 파워, 메인 보드 같은 부품들이 합쳐지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대략적으로 컴퓨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육아의 과정은 자녀의 출생부터 유아, 어린이,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이 되기까지 옆에서 면밀히 관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육아는 인간 이해의 가장 중요한 경험이며 통찰을 부모에게 선물한다. 인간을 알고자 한다면 육아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