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최악을 극복하는 힘)
김연경 선수의 귀국 인터뷰 영상을 본 그날 하루는 종일 격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올림픽에서 한편의 드라마를 쓴 선수들을 또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귀국 실중계를 봤다가 배구협회의 생색과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질문을 해대는 꼴을 보고 기분만 나빠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 장면과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 내 머리속에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각종 꼰대 임원들과 팀장, 진상 직원들까지 모조리 생각나 버린 것이다.
다른 부서임에도 자기 집 하인 대하듯 툭 하면 불러서 무시하듯 하대 하던 임원,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사전에 확정되어 있던 팀원의 해외여행 티켓까지 일방적으로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팀장, 여성동료에게 폭언과 위협적인 행동을 가하고도 뻔뻔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사원의 인터뷰까지 모조리 다 머리속에 재현된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이 파노라마 처럼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업무 특성 상 그때 당시 어쩔 수 없이 모든 주장을 말없이 들어줘야 했던 무기력과 떨림과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현재의 나에게 옮겨 붙는 느낌이었다.
뇌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이런 거친 감정의 그물망에 포획되어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비슷한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암묵적 기억은 단지 사실이나 정보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신경계 반응, 신체감각, 근육과 근막의 긴장, 몸의 자세, 감정, 방어 행위에 사용되는 근육의 움직임 패턴 등이 포함된다." (p151)
의식적·합리적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나의 '사고 뇌'는 앞서 나열한 일련의 경험들이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넘어가려 하지만 감정과 습관, 기본적인 생존 기능에 핵심역할을 하는 나의 '생존 뇌'는 인터뷰 영상을 보는 동안 예전의 경험들을 활성화시켜 무기력하고 통제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며 불안과 분노의 감정으로 이끌고 갔다. 다른 상황에서도 생존뇌는 그때의 신경계 반응, 신체 감각까지 그대로 재현 시킨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일단 나 자신과 거짓없이 만나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존 뇌와 신체의 특정한 스트레스 요인의 관계를 바꾸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생존 뇌가 언제, 무엇을 위협적이거나 도전적이라고 인지하는지 파악 해야 한다는 것이다." (p318)
책에서 소개하는 마인드 피트니스 훈련은 가장 기본이 되는 접촉 지점 연습, 스트레스 회복 연습으로부터 시작해 스트레스, 감정, 만성 통증, 한계와 저항을 다루는 방법 등을 세세하게 소개한다.
그 어느 책이나 미디어에서 소개된 방법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고 효과적이지만 실제 실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공적인 마인드 피트니스를 위해서는 의식적 의도, 자기 규율,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어쩌다 지금 상태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면 우리 뇌에 새겨져 있는 강력한 관성을 파악하게 되고 거기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도 너그러워 질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부터 자유롭게 된다.
스트레스도 산업화 되는 경향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도록 쉽고 빠른 해소 방법이 상품화 되고 있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 시킬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데 있어서 쉽고 빠른길은 없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족과, 직장, 소속된 단체 내에서 갈등, 두려움, 수치심, 끊임없는 경쟁,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과 자신의 한계, 타인의 무례, 교통체증, 천재지변 등 셀 수도 없는 원인으로 부터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는 자신의 몸과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는 것을 당연시한다. 일이나 목표의 성취를 위해서는 스트레스쯤은 참고 견디고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 되거나 트라우마가 생기면 신체 이상 증상이 발생하고 일상생활 조차 힘들게 될 수 있다.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시, 회피, 막무가내식 인내가 아닌 자신에 대한 관심과 무비판적인 관찰이 먼저이다. 수십년 이라는 시간에 걸쳐 자신이 어떻게 조건화가 되어 있는지 끈기있게 살펴봐야 한다.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도 생기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