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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기 라이프 Jul 24. 2024

나의 초라함과 마주할 수만 있다면

퇴사 후 5년 동안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 것 같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치고 나왔는데 연봉 이상은 벌어야 하지 않나?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 꺼라고 했는데 생활패턴이 더 깔끔해야 하지 않나?

책은 일 년에 백권 이상은 읽어야 하지 않나?

운동은?

글쓰기는?

투자는?

많은 기준점을 가지고 스스로를 다그쳐 갔다. 겉보기엔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원인 모를 감정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이, 때로는 마음속 한구석에서 슬그머니 피어올라 어느새 온몸을 적셔버리는 이 불안과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슨 짓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잊을만하면 고개를 드미는 녀석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하나씩 생각해 봤다.

내가 열거한 '행동' 목록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가끔씩 만나게 되는 타인에게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꽤 잘 해내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결국 얻는 것은? 인정욕구 충족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느끼는 성취감이나 안정감,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툭하면 나를 괴롭혔던 불안과 두려움, 초라함이 일시적으로나마 사그라든다. 

'그래 난 이런 존재였지. 으쓱.'


결국 나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토록 많은 규율을 만들어 냈다.

초라함을 느끼고, 버림받을까 봐 불안감을 느끼고,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느낌으로 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끼고' 이다. 대부분의 문제가 원하지 않는 감정, 느낌에 대한 회피, 외면, 도망으로 인해 시작된다.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초라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내면에 대한 많은 책에서 이것을 특정 감정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불안, 두려움에 속하는 감정에 대해 저항한다. 느끼기 싫어하는 것이다.

감정, 느낌의 대한 저항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핸드폰, 게임, 술, 자극적인 콘텐츠 등이 대표적이다. 핸드폰에 빠져 있으면 의식이 작은 화면 속 세상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불안감으로부터 아주 손쉽게 도망칠 수 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계속 보게 된다. 결국 중독된다.


성공을 위한 습관으로 정의되어버린 여러 행동들은 어떨까? 나는 이런 것들에 강박, 중독되어 있었다. 그래야 나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니까!

긍정확언, 새벽기상, 운동, 독서, 공부 등이 대표적이다.

하루를 이런 것들로 꽉 채워 나가면 무엇인가 이루어낸 느낌이고 해낸 느낌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원하지 않는 감정에 휘말려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심하고 있으면 여지없었다.

당연히 그러한 습관들이 삶에서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불안, 두려움, 초라함, 비참함 등 어느새 피어오르고 있는 감정의 에너지를 외면하고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리기 위해 강박적으로 그 무엇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아니, 점점 더 커진다. 어떤 행동을 하던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자기를 봐달라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왜 공황장애가 그토록 흔한 것일까? 편리함이 넘쳐나는 현대인들이 왜 그토록 많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꾹꾹 억눌려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 폭발하는 것이다.

감정을 바꾸려 별 짓을 다해봤건만 소용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어떤 행동'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저항하지 않고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

복잡할 것 전혀 없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경험상 그 무엇보다 어렵다. 사실 나는 여전히 어렵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엔 열정이 넘쳐나지만 슬그머니 그전의 삶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너무나 강력해서 『상처받지 않는 영혼』,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의 저자이자 영성가인 마이클 A. 싱어는 인생을 걸어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감정, 느낌은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몸을 통해 한다. 몸을 통해 억압된 감정의 에너지가 풀려나기 위해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누르고 멋져 보이는 행동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결과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무시당한 감정은 더욱더 큰 에너지가 되어 결국엔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짜증, 좌절, 분노로 표출되곤 했다.


명상은 내 감정을 좋게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올라오는 감정, 느낌을 그대로 지켜보며 느끼는 것이다.

자세를 곧게 하고, 힘을 빼고, 눈을 감는다.

하루에 5분만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내어 내면의 느낌마주하고 지켜보면 막힌 에너지가 조금씩 풀려서 흐르는 것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앞으로 여정에 대한 글을 종종 것 같다.



충분히 놓아 보내어서 내부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게 되면 그 몸부림이 그친다. 당신은 직접 경험을 통해, 자신이 이제껏 원했던 것이란 오로지 내부의 거침없는 에너지 흐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싸움은 완전히 종식된다.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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