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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는 소음

스페인에서 정의하는 ‘우리’의 경계

by 필로



출근길,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을 타면

나는 종종 내가 세계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서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이곳은 다양한 피부색과 억양, 옷차림을 가진 사람들이

조용히 어울려 지하철의 리듬을 채우는 도시다.


라틴 아메리카, 마그레브, 서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외국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해지는 순간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요즘 한국에 외국인 너무 많아.

솔직히 좀 불편해.

그냥 다 한국 사람처럼 생겼으면 좋겠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지금의 나에게도

누군가가 속으로 품고 있을지 모르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페인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람’일까?


이 질문은 종종 나를 멈춰 세운다.


나는 여기서 세금을 내고 일하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도시의 ‘게스트’ 같은 기분을 벗지 못한다.


어떤 날은 환영받는 손님처럼,

어떤 날은 불청객처럼.





관광객을 싫어하는 도시.


‘투어리스트 고홈(Tourist Go Home)’이라는

낙서가 벽에 쓰인 동네.


그곳에 사는 나 역시

관광객과 ‘거주 외국인’ 사이에서

정체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나는 이들에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까,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까.


그 질문에 뾰족하게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언제 한 사회의 일부가 되는 걸까.


단지 오래 머문다고 해서?

혹은 현지 언어로 문장을 완성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일상 속에 섞인다고 해서?


‘받아들여진다’는 건,

단순히 같이 있는 것 이상의 의미다.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 다름을 기꺼이 함께 살아가는 것.


그러니까 받아들여지는 것은

존재의 권리이며, 인간의 자리다.


그리고 그 권리는

자기 힘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스스로를 드러낼 책임이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존재를 오해 없이 들으려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글로벌한 도시들은 지금,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얼마나 낯선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직장에서 반복해서 마주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과 언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불완전하게 부르며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너는 왜 여기 있니?”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려 애쓴다.


물론, 그 애씀은 균질하지 않다.

어떤 이는 나를 ‘알리시아’라 부르길 원하고,

어떤 이는 내 이름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어떤 이는 발음을 외워서라도 정확히 부르려 한다.


나는 그들의 태도에 따라

다른 속도로, 다른 무게로 존재한다.


받아들여진다는 건, 결국

그 사회가 나를 어떤 이름으로 기억하느냐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스페인에 살고 있지만,

내가 자란 사회는 한국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아직,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에 우리는 너무 서툴다.


같은 언어, 같은 얼굴, 같은 습관을 지닌 이들에게조차

속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우리는

이질적인 타인을 만났을 때,

“적당히 조용히 지내달라”는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 시선을 내면화한 내가

이곳에서 받아들여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고,

동시에 회복이다.


나는 이제,

내가 무의식중에 거부해온 것들을

다시 배워야 한다.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그 안에 어떤 용기와 지속이 필요한지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사람을, 어떤 얼굴을,

어떤 억양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느 도시에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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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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