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집 이야기 Mar 23. 2017

첫눈에 반하다?  

-내 안에 다른 면 만나기-



첫눈에 반해 본 적 있나요?


수많은 영화와 시, 소설, 음악들은 첫눈에 반하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래 나 아직 안 죽었지 하며 어깨가 한동안 으쓱 올라갈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향한다면 고단한 짝사랑의 길에 발을 디딘 것을 조금은 서글퍼해야 할지도 모른다.


첫눈에 반한 다는 건 어떤 걸까

나에게는 절대 해당사항이 없는 품목쯤으로 취급하며 소설이나 영화가 만든 환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결국은 외모만 보고 반하는 게 아니냐며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나 또한 그러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수많은 프로반함러들이 묘사하는 이성은 너무나 완벽한 아름다움에 찬양해 마지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첫눈에 반하고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천사가 된다.


첫눈에 반하는 일이란 건 번지르한 외모의 남녀 주인공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지금 내가 첫눈에 반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 사람은 흔히 말하는 키가 크고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운동을 배우는 중이었고, 그는 친철한 선생님이었다.


수강생들 앞에서 설명하는 그를 보는데 순간 엄청나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주변은 어두워지고 그 사람 주변으로만 빛이 보였다. 갑자기 시간은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갔다. 설명하고 있는 강사의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믿지 않겠지만 시간이 순간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강렬한 감정은 한동안 나를 뒤흔들었고 몇 달간의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오랜 세월 끝없이 반복되었던 주제들에 대해 써내갔던 작가들에게 대대적으로 사과를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순간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이렇게 강렬하게 일어났던 걸까? 그는 멋진 영화 속의 주인공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첫눈에 반했고, 한동안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렇게 첫눈에 반하는 순간에는 많은 투사가 일어난다. 눈에 콩깍지가 씌여지는 그 순간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본다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신화에서 프시케가 등불을 들고 어둠 속의 에로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사랑에 빠지며 그녀는 남신인 에로스의 정제를 알고 놀랍고 두려워한다. 순간 그녀는 자신 안의 남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비슷한 나이 때의 남녀가 모였다. 사람에게 경계심이 강하고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나에겐 이런 모임조차도 도전이었고, 내겐 도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모임에서도 어떠한 감정들은 오고 간다. 그리고 투사도 일어난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몇 번 언급한 그의 행동이 시작이 되었다. 이상하게 상대방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게 혹시 관심의 다른 표현일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극적인 전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모임은 끝이 났고 그날 밤 찾아온 꿈이 있다.


꿈속 어두운 공간 바닥에 앉아 있다.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가 있고
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한다.
자루 같은 데서 꺼낸 안경을 만세에게 선물한다. 만세가 안경을 쓰는데
그 안경은 하트 모양이다.


마지막 모임 날 나는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며 끊임없이 그 사람을 관찰했었다. 아마도 저렇게 눈이 하트가 되었을 것이다. 저 행동들은 분명 썸의 시작이라며 확신에 차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임이 종료된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왜 그렇게 상대방에게 훅 마음이 일어난 걸까?


그 당시의 나는 틀을 깨고 싶었다. 언제나 혼자 생각하고, 혼자 나누고, 혼자 마무리하는 내 안의 습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에 참가했다. 그 사람은 모임의 중요 스텝이었으며 여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상대했으며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색한 모임에서 자연스레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다. 우연히 옆에 앉았을 때는 갑자기 허용범위 이상의 공간에 너무나 자연스레 들어와 말을 걸곤 했다. 이 모든 게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했던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 안에는 다른 것들이 일어나고 의미를 두고 있었다.


나는 개인 공간에 대한 허용치가 작은 사람이다. 누군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게 가장 스트레스이며 항상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누군가에게 친근하게 자연스레 다가가는 게 익숙했던 그 사람의 친근함은 정확히 내 안에 숨어있던 그런 부분들을 자극했다. 혼자 있는 게 너무나도 좋았지만 사실 이렇게 친근하게 나의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내게도 필요했던 것이다.


이건 오래전에 강사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강사는 많은 수강생들을 이끌며 수업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개인의 상태를 살피며 다가왔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것이지만 순간 일어났던 나의 감정은 우습지만 조금의 불순했고, 약간은 인간적이었다고 변명해본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지닌 양성이고 외부로 드러나는 성 이외에 내면의 성이 있고 이 내면의 인물 또한 나를 통해 성장한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내 안의 남성은 일을 추친하고 결정을 내리며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꿈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세분화된 에너지를 만났다. 조직적인 모임 속에서 순서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지만 개개인에게 부드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그 사람에게서 이러한 에너지를 발견했고, 순간 내 안에서 강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며,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발견이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내 안의 남성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꿈은 삼둥이 중에 마성의 만세라 부르며 이성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은 만세를 보여준 게 아닐까. 사실 내 안에도 이렇게 매력적인 아이가 살고 있어. 이 아이가 이렇게 따스한 사랑을 받는 건 세상을,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야 라고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비록 지금은 하트 안경을 써야 하고 내 에너지는 지금 막 발견한 아이의 모습이지만 티브이에서 보던 그 만세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내 투사를 생각해 본다면 내 안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한 반가운 꿈인 것이다.


이 뒤에 두 사람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커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물론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너는 내 안에 있는 이성이야. 이건 내 안에서 일어난 투사야!’라는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순간을 점령해 버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을 것을 상대방을 통해 보려고만 한다면 그 관계는 건강할 수 없기에 그런 점을 잠시라도 들여다보기 위해 반년도 더 지난 꿈을 꺼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에 눌러놓았던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