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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Apr 28. 2017

불확실성의 문을 열다.

-정답을 찾아서-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한해의 운수를 본다. 불분명한 것들에 대해 잠시나마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올해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로 인한 불안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통계라는 규칙 안에서라도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하루를 큰 조각들로 보면 비슷비슷하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삶은 때론 동일해 보이는 것들의 지루한 반복 같기도 하다. 이 반복되는 삶 어딘가에 정답이 숨겨져 있는 걸까. 몇 달 전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2016년 12월 20일의 꿈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피해 계단을 내려와 지하로 도망간다. 같은 편인듯한 남자가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아래로 내려오니 검은 가죽의상을 입은 여자 히어로가 나를 돕는다. 내 뒤를 따르던 남자도 어느덧 여자와 같은 히어로 의상을 입고 있다. 우리가 내려온 지하에는 둥근 큰 방이 있다.

나는 이 방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찾고 있다. 벌레같이 작은 무엇을 찾아들어보니 어느새 열쇠 2개로 변해 있다.

앞에 있는 문으로 간다. 오래된 옛날 문이고 문 중앙에 열쇠 구멍도 2개다. 열쇠 2개를 다 넣고 돌리자 문이 열린다. 이 문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확신과 잊어버리지 않게 잘 봐 두어야겠다는 생각에 단단히 결심을 한다. 문을 열었는데 안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며 발을 내딛는데 빈 공간인 듯 쑥 빠지는 느낌이 들며 잠에서 깬다.   


무언가에 쫓겨- 그게 현실의 각박한 삶이나, 오르지 않는 월급, 또는 지루하게 반복되어 정체된 내 삶이든- 지하의 방으로 내려온다.  


그 방은 마치 해리포터 속에 나오는 덤블도어의 방 같았다. 어두 침침한 공간은 촛불로 밝혀 놓은 듯 침침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벽 쪽으로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바닥에는 낡은 카펫이 깔려 있다.


판타지 영화 속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평범하지만 알고 보니 주인공인 나는 히어로들과 함께 이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있고 그것은 아마 바닥에 떨어진 열쇠였나 보다.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 여정임을 두 명의 히어로가 함께 있음에서 증명해준다. 그들은 나를 보호하며 여기까지 오게 할 수는 있지만 대신 무엇을 해줄 수는 없다.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람은 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열쇠를 찾았다.


하나도 아니고 2개다. 숫자 1 다음에 나오는 숫자 2는 하나에서 2개로 분리된 무엇이다. 관계에서는 나와 타인이며, 하나였던 세계와 공간이 나뉘면서 더욱 세분화되기 시작하는 숫자이다.


하나에서 둘로 나뉜 나의 세계는 무엇일까. 내 안에서 새로 열린 이곳은 어디일까? 꿈속의 나도 너무나 흥미로웠다. 중요한 것들을 보관할 때 열쇠를 채운다. 열쇠를 소유한 이들만이 그것을 열수 있다.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열쇠를 소유한 이들만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열쇠는 나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이것을 꿈속의 나도 알았다.

문을 열기 전 흥분과 호기심이 밀려온다.


여기에는 답이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소명에 대한 답!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있던 어떤 사실에 대한 기억! 아니면 세상의 진리?!

무엇이든지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내가 문을 열고 맞이한 것은 어둠이며 무(無)이다.


어렸을 때는 밤에 불을 끄고 자는 게 너무 무서웠다. 검은 마차를 탄 검은 마부가 창문 너머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검은 마부를 부르는 노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모두가 잠든 틈아무도 모르게 나를 태우고 저 멀리 가버릴 것만 같았다. 어둠은 사악하고 물리 쳐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어둠이 아니라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았다.


문을 열었을 때 아쉬웠고 깨어나서는 실망했다. 주인공이 드디어 이야기의 핵심인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에 드라마는 다음회를 알리며 끝이 났는데 이 드라마는 언제 다시 시작할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꿈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찾아와 주겠지만 지금 조금만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직 내게는 이 방안을 들여다볼 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꼬꼬마 레벨 주제에 열쇠만 얻었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오랜 기간 닫혀있기만 했던 내 안의 방은 지금 막 열렸고 그 안에 있는 건 어둠뿐이다. 내가 알게 된 답이란 이렇게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이다. 방안에 너무나 멋진 그림들이 가득했다면 나는 멋진 그림쟁이로써의 꿈을 품고 가득한 원고지들을 보았다면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나를 품고 따뜻한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저 먼 곳에서 온 계시처럼 들렸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정해진 답은 다른 가능성을 닫아 버렸을 것이다.


어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깊이를 측정할 수도 형체를 구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만큼 깊을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형태를 가질 것이다.


모호함과 불확실함은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내가 열었던 문은 그런 문이다. 불확실한 삶이란 이렇게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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