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집 이야기 Dec 09. 2016

마음속 비 내리기

-가벼운 비, 무거운 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실내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누군가와 우산을 쓰고 함께
걷는 것도 좋다.


꿈속에서 비가 내린다면 어떨까.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꿈은 마음 한편에 쌓여있던 묵은 덩어리들이 씻겨 내려가는 개운함을 느끼게 한다. 꿈속에서의 비는 시원하게, 그리고 가끔 너무나도 무겁게 내린다. 비가 무거울 수 있을까? 무거운 비는 어떤 비일까?


비가 오는 두 꿈을 마주하고 보면 재미있다.

 

1#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친한 동생과 걷고 있다. 우리는 같이 우산을 쓰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비는 뭉쳐진 구름에서 내린다. 구름이 뭉쳐지기 위해서는 땅에서 증발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더운 기운들은 땅의 수분 중 일부를 증발시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만든다. 구름 속 물방울

양이 계속 증가하면 물방울의 크기가 커지고 무거워지면서 비가 내리게 된다.


내 안의 땅에 온도를 올리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바짝바짝 피 마르게 했던 누군가 때문 일수도 있다. 몇 년째 퍽퍽하게 지내온 일상의 목마름 때문 일수도 있다.  그리고 내 경우처럼 바짝 메마른

내 안의 감성일 수도 있다.


대학시절 매일매일 음악을 찾아들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발매 별로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들었다. 밤새 과제를 하는 동안에도 들었고, 이동하는 사이에도 들었다. 음악 없이 움직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들었던 음악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같은 음악을 여러 번 오랜 기간 듣다 보면

그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들도 맞이하게 된다. 한 곡에는 여러 시간들이 겹쳐지고 음악 속에 기억이 남게 된다.


몇 년간 나는 음악을 찾아 듣지 않았다.

기기에 담긴 음악을 재생할 때는 외부의 소음 차단용이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나는 내 안의 어느 부분으로 끝없이 끝없이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혼자 락 공연을 찾아다닐 만열정적이었던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도 이제 몰랐다. 그렇게 내 안의 감성들은 바짝바짝 말라 증발되어 뭉쳐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문득 예전 밴드가 궁금해졌다. (이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고 예전 기억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직접 구매한 씨디를 구매 후 들어야 했던 음악이, 이젠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검색 한 번이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유투브로 검색을 하고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었다. 아니 더 멋진 음악을 하고 있었다.


정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정보를 느끼고 내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 들은 그 음악들이 다시 나를 설레게 했다. 그날 밤 나는 구름에 저장된 감정들이 쏟아지는 꿈을 꾸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꿈에서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는 이미지가 스쳐갔다 너무나 짧은 조각 꿈이었지만, 많은 양의 비는 그동안 증발시켜 버리기만 한 내 안의 감성의 뭉치 같았다.


이 빗속에서 나는 지인과 동행하고 있으며 비를 피해 걸을 수 있는 우산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좋은 일행과 한 우산을 쓰고 이동하는 건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다.


또 다른 비는 버거운 상황이나

감정을 맞이할 때이다.

2#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오는데 밖이 무척 어둡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갑자기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다. 머리로 떨어지는 비가 젖는다는 느낌보다는 굵고 무겁게 느껴진다. 마치 머리 위만 공기의 기압이 달라진 것 같다. 우산이 없는 내게 누군가 우산을 같이 쓰자고 다가온다.


무거운 비를 맞은 날은 어떠했을까. 무거운 빗속의 아파트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로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중 하나다. 이곳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살았던 곳으로 무기력하고 고착된 나의 패턴이 보일 때나, 집안사와 연관된 일이 생기면 자주 등장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나는 우산도 없이 밖으로 나가려 한다.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이 비가 갑작스러운 비는 아닌듯하지만 나는 우산을 준비할 수 없었나 보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비는 젖어서 축축한 느낌이라기보다 너무나 무거웠다. 내 머리 위 공기 기압만이 다르다는 듯 너무나 버거웠다. 이 비는 내게는 너무나 버거운 비다. 집에서 나온 나는 곧장 머리로 이 무거운 비를 맞고 있다. 그것은 버거운 생각이며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혼자 이렇게 빗속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꿈은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와야지만 묵은 때도 씻겨져 내려가고 농작물들도 자란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고 구름이 점점 커지기만 한다면 그 구름은 태풍처럼 커져 모든 걸 집어삼킬 것이다. 태풍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집은 부서지고, 도로는 망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지불해야 할 비용도 커지게 된다. 태풍이 자주 온다면 복구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내 안에도 비가 내릴 수 있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을 만들자. 그것이 몇 년간 잊혀졌던 노래 한곡을 듣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카페에 혼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자라기 위해서는 땅의 수분이 증발하고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내 안의 뭉쳐진 구름을 찾아 시원하게 내릴 수 있게 잠시 시간을 주자.


작가의 이전글 감정을 세탁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