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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May 19. 2023

질러놓으면 가게 된다.(괌 0326)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가속도가 붙는다.

가장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던 셋째 날.

짧은 기간 동안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은 많았기에 최적의 동선과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한 하루였다.


쇼핑은 오픈 런, 음식은 안 짜게 해 주세요.

 대형 아웃렛 GPO에 가기로 했다. 물건이 빠지기 전, 이른 시간에 가야 했고 코로나 여파로 인해 첫 버스 시간은 늦었기에 무료로 탈 수 있는 카드가 있음에도 과감히 택시를 호출해 타고 갔다.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해외만 가면 평소보다 무언갈 사게 된다. 아웃렛이라 안 사면 손해 같다. 하지만 이것 역시 코로나 여파로 물건이 예전만큼 없고 오른 환율로 인해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는 얘길 익히 들은 상태였다. 11년 전에 갔을 때 사온 캐리어를 아직도 잘 쓰고 있을 만큼 캐리어는 여전히 효자 상품 이라길래 언니와 엄마의 요청을 받은 만큼 캐리어 코너부터 달려갔지만 원래 쇼핑은 맘먹고 사려는 건 못 사는 법. 사이즈가 없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수납이 별로라 얘네 품목은 다 탈락.

 여름 원피스, 여름 신발 두 켤레, 뜬금없이 가방을 하나 집어 왔다. (살까 말까 오백시간 고민함. 명품 아님. 그런 거 아님. 가방 잘 안 사서 원래 한 번 살 때 천년만년 고민함)

 우리가 결제하고 나올 때쯤 한국사람들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먹을 때 옆 테이블 있던 한국인 커플이 지나가는 것도 봤다. 이렇게 한국 사람 많은데 괌 너네 진짜 우리한테 잘해라.

 1차 쇼핑 끝나고 바로 옆에 있는 롱혼 스테이크 집으로 간다. 가장 유명하다는 롱혼 스테이크는 둘이 먹긴 너무 많을 것 같다는 친구의 의견에 다른 스테이크(뉴욕 어쩌고...) 하나와 샐러드 하나와 여행 카페에서 득템 한 쿠폰으로 무료 음료를 하나 시켰다. 서버가 음료 잘못 가져와서 각자 음료 하나씩 먹음. 이번엔 잊지 않고 T멤버십 할인도 챙겼다.

 너무 짜니까 반드시 less salt 외쳐야 한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먼저,

"less salt 얘기할꼬야?" 라고 물었다.

궁금해졌다. 한국 사람들 다 저렇게 말한다는 거 알고 있단 건데, 너넨 정말 그냥 먹어도 안 짠 거야?

덕분에 짜지 않고 간은 딱 맞았고 적당히 맛있었다.

식전 빵 안주면 따로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담당 서버는 알아서 잘 챙겨줌.

휴양지에서 빡세게 노는 맛.

점심 먹고 각자 2차 쇼핑을 마친 후 돌아올 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또  택시를 불러 타고 숙소로 복귀. 사랑의 절벽을 가기 위해 갤러리아 면세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사랑의 절벽. 

괌 시내에서 유일한(?) 관광지라고 보면 될까. 11년 전 갔었던 나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 친구에게 선택권을 넘겼고 그래도 친구는 가보고 싶다고 해서 띄엄띄엄 있는 버스 배차 시간에 맞추어 탑승. 몇 안 되는 승객들과 함께 사랑의 절벽 하차.

2012년과 2023년. 화질 말고는 별로 달라진건 없음.

돌아가는 버스가 거의 한 시간 뒤라 한 시간 동안 있을 덴 아닌데?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2012년, 나와 친구가 전망대에 올라서 "와아~~~~~~~!!" 탄성을 질렀던 것처럼 친구도 복붙으로 똑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 나도 저랬었지... 지금은 또 한 번 와봤다고 거만해졌구나 싶었다.  

 포토타임 구도에서는 둘 사진 찍어 줄 젊은이들을 찾아 헤매다가 같이 버스 타고 온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어+영어 끔찍한 혼종을 써가며 사진 부탁도 했다.

자연경관만 찍은 사진이 없길래. 어쨌든 여기가 포토존. 오후에 가면 어차피 역광. 이것이 최선

그렇게 생각보다 금방 한 시간이 흘렀고 같이 타고 온 사람들과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온다. 원래의 계획은 이렇게 돌아와서 다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거였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아주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정을 진행했음에도 역시나 계획한 일정보다 한 시간이 지연되어 물놀이 일정은 좀 무리가 되어도 내일 오전으로 미루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숙소로 복귀. 도대체 하루에 숙소를 몇 번을 다시 들어오는가. 친구는 들어올 때마다 아웃렛에서 새로 사 온 옷으로 계속 옷을 바꿔 입고 나간다. 열정이 대단하다. 그저 나는 귀찮다. 발이 아파서 숙소 들어올 때마다 신발만 계속 바꿔 신고 나갔다고 한다.


 여기도 그냥 한국 식당. 비치 앤 쉬림프

첫날 야식으로 포장해서 사 오려다 가지 않은 비치 앤 쉬림프를 마지막 저녁으로 결정했다. 어제 산책하면서 보니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 많아서 대기를 예상하고 갔는데 별 대기 없이 들어갔다. 옆집은 서양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는 또 죄다 한국 사람. 하지만 실패하기 싫으니 저도 그냥 남들 가는 곳을 갑니다. 후훗

 가장 유명한 코코넛 쉬림프와 비치인 쉬림프를 시켰는데 새우는 튼실하고 맛있었다.(근데 새우튀김이 맛없긴 어렵지 않나) 사진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안 찍었으니 없겠지. 친구는 찍었을 텐데 없다. 찍고 나한테 안 줬나 보다. 그런가 보다 한다. ㅋㅋㅋ 메뉴 나오기 전 주문했던 수제맥주 블루문 사진만 있다. 

보기엔 상콤하게 생겼구먼

한국 사람들이 시켜 먹고 블로그 올렸길래 또, 수제맥주라고 해서 궁금해서 시켰는데 내 타입은 아니었다. 딱히 친구 타입도 아니었다고 한다. 쓴맛+떨떠름 한 맛이 나는데 맥주바보에 단거+단거+단거 좋아하는 알콜 문외한에겐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여기도 T할인이 되어서 할인을 받았고 생각보다 현금이 많이 남아서 이때부터는 현금을 쓰기 시작했다. 할인이 되었는데도 꽤 비쌌다. 바로 체감이 안되어서 그렇지 환율 계산해 보면 고가의 음식이라, "우리 지금 되게 비싼 거 먹은 거 알아?"  "한 끼에 저 정도면 진짜 물가 장난 아니긴 하다" 같은 말들을 반복하긴 했다. 

 괌이라도 달러 쓰는 이곳은 미국이긴 미국. 그래도 나는 가이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산을 책정했고 결국 최종 정산 시 최초 예산 대비 넉넉한 잔액을 남겨 고객님을 만족시켜 드렸다.(방법은 간단하다. 최초 예산을 넉넉히 잡으면 됨.)


시간은 늘 이곳에선 빨리 흐른다.

마지막 밤.

밥을 먹고 소화를 시켜보자. 소화를 시킬 정도로 많이 먹은 것 같진 않지만 맥주 때문에 배가 부르다. 큰길을 걷다가 어제저녁 선셋맛집, 타시그릴이 있던 두짓타니 호텔 안을 통과해 바닷가로 가본다. 수영장도 닫은 시간이라 해변 선베드에 앉아본다. 늦은 시간인데 아직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들, 모든 게 다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고 각자 생각에 잠긴다.  돌아갈 일상, 다시 해 나가야 하는 일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

 "이번엔 너 따라왔지만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너 이제 라운지 카드 만들었잖아.(요것도 내가 알랴줌) 그거 아까워서라도 이제 가야지"

내가 힘주어 말하자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도 이때는 몰랐다. 정말 친구가 돌아와서 한 달도 되지 않아 5월, 6월 연달아 항공권 두 개를 끊어댈 줄은. 내가 다시 발동을 걸어 줬나 보다. 

 나는 좋은 친구인가, 친구를 유흥자로 만드는 유혹자인가?

 아무튼 이렇게 마지막 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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