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호 Nov 06. 2019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쓰고 싶을까?

무모하게 시작한 항해, 브런치


 우연히 페이스북을 떠돌다가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무엇에 대한 글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글을 읽는 내내 나도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사실 당시 나는 회사생활에 많이 지쳐 있었고 회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중에 하나가 글쓰기였고 내가 작가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마침 "브런치 작가 모집"이라는 배너가 눈에 띄었다. 이것저것 알아보니 작가로 등록되는 것이 쉽지 않다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처음 도전한 글은 나의 일상을 적은 글이었다. 수십 수백만명의 직장인들이 모두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떠서 출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는 삶을 적은 글이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낙방할 만한 글이었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합에 참가한 선수와 같다고 할까? 어차피 몇 번의 실패는 예상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른 글을 썼다. 이번엔 영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이번 도전에는 내가 운영하고 있던 블로그도 레퍼런스로 같이 올렸다. 내가 본 책과 영화에 대해서 나의 생각들을 간략하게 적어둔 블로그였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다시피 한 블로그라서 크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선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었으니 뭐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5수 6수를 했다는 글을 심심찮게 봐 왔던 터라 두 번만에 합격한 내가 마치 엄청난 일을 해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하나씩은 꼬박꼬박 글을 써 보겠다는 야심 찬 각오로 브런치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이렇게 힘든데 글은 언제 쓰지?


 부끄러운 핑계이지만 내가 일하는 업계는 업무강도가 엄청나다. Client 와의 미팅도 겹쳐서 7월 말부터 최근까지 정말 쉴 틈 없이 바빴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는 날이 잦아졌고 집에 오는 택시에서,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가며 일에만 매진했다. 평일에는 네버엔딩 야근에 주말 출근도 매주 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글을 쓸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일에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보다는 소파에 누워 유튜브나 보며 빈둥거리면서 복잡머릿속을 비우는 게 더 좋았다. 자연히 몸이 게을러졌고 나의 초심이 흐려졌다. 처음 브런치의 작가를 꿈꿀 때에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고 나의 글에 공감하고 아껴주는 독자들을 만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작 현실의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작가였다. 부지런히 글을 올리고 계시는 다른 작가님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다잡고 다시 글을 쓰기보다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버리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콘텐츠의 부재였다. 나는 사실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몰랐다. 작가신청할 때에는 내가 영어공부를 하며 발전해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굳은 마음으로 공부를 다짐했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야근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니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아침 출근길에 쉐도잉을 하고 야근을 하는 중에는 항상 미드를 틀어놓기는 했지만 항상 업무가 우선이었던 터라 이것들이 나의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공부가 되지 않으니 나의 글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을 인식하지 못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조차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작가로 등록되기는 했지만 결국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무능한 작가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잘할 수 있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가 무엇일까? 요 며칠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내 주변에 있었다. 내가 가장 꾸준히 하고 있는 것과 내가 매우 좋아하는 것, 나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역시나 "독서" 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는 역시 책만큼 좋은 콘텐츠는 없는 것 같다. 미친 듯이 야근을 하는 와중에도 책만큼은 꾸준히 읽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고 집이 종점과 가까워서 아침 지하철에서는 항상 앉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출근길 독서를 해온 지 어느덧 6년째다 (출근시간이 워낙 길어서 책을 보다가 졸리면 잔다. 한숨 푹 자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출근길에 독서와 잠을 동시에 잡을 수 있으니 이것도 나에겐 행운이다). 이전에도 책에 대한 글을 쓰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 책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독후감의 형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나만의 생각과 감상을 담아내 볼 생각이다.


 콘텐츠를 정했으니 얼른 글을 써야겠다. 내 가슴이 다시 설레기 시작했니까 :)

작가의 이전글 Seattle의 새로운 명물, The spher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