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과의 미팅을 위해 8월 초에 시애틀을 다녀왔다. 내가 시애틀에 간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밤에 잠 못 자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 때문인 듯하다. 그들이 이 영화를 실제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만큼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 한 편이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그곳을 불면증의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시애틀을 대표하는 '진짜'는 따로 있다.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시애틀 그 자체가 아마존이라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한다. 시애틀의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빌딩들 중에서 아마존 소유의 빌딩만 44 채라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케 한다. 또한, 아마존은 매일같이 시애틀 시민들에게 무료로 바나나를 나눠준다. 바나나가 몸에 좋다는 이유로 시애틀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 자신들의 돈으로 매일같이 바나나를 나눠준다. 시티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마존의 직원들이니 직원 복지 차원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긴 하지만 일개 사기업이 한 도시 시민들의 복지에 이 정도로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이쯤 되니 아마존에서도 이 도시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극대화해 줄 만한 랜드마크를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은 시애틀 시내 한가운데에 "The Spheres"라는 4층 규모의 실내 수목원을 세웠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방문하여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휴식도 취하고 다양한 팀워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한다. 아마존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아마존 직원과 함께가 아니면 입장할 수가 없는데, 다행히 함께 미팅한 아마존 직원 중에 안면이 있었던 한국분의 도움으로 이곳에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수목원 내부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4만 여 종의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건물 한쪽 벽 전체를 뒤덮은 green wall 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Green wall의 반대편으로는 각 층마다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두어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공간도 마련해두었다. 이런 곳에 한 시간만 느긋하게 앉아있어도 엄청난 힐링이 될 것 같다.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도 상당했다. 다만, 건물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실내가 너무 더워지거나 눈이 부실 수도 있고, 식물들에게 주기적으로 물을 분사하기 때문에 실내가 매우 습하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하는 건...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작은 휴식이나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서는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나 식물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동물원을 가거나 식물원을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프가 동물원을 좋아해서 연애할 때에는 거의 매년 동물원을 다녀왔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각자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사진이나 TV 에서나 보던 얼룩말, 사자, 호랑이, 물개, 원숭이들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볼 수 있어서 매우 신기했다. 식물원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생 때는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했기 때문에 항상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여러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의견 공유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지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사람들에 대한 피로도가 더욱 심해졌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회사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12시간이 넘었고, 함께하는 시간으로만 따지면 가족들보다 회사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고, 힐링이 필요할 때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물원보다는 주위가 조용하고 한산한 식물원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 식물원이라고 하면 식물 공원 같은 느낌이다. 넓은 야외 공간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생태계를 이루는 새와 곤충, 작은 동물들의 소리를 들으며 숲과 함께 호흡하는 장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아마존의 "The Spheres"는 이런 이미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곳이다. 시티 한 복판에 세운 식물원이다 보니 실내 식물원이라는 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식물들의 광합성을 위해 유리 건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안전과 위생을 위해 곤충이나 동물들이 없는 식물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 건물이 진정으로 필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각자의 고향에서 자신들이 수억 년을 살아오면서 적합하게 진화한 그 장소를 떠나서 굳이 새로운 장소로 억지로 끌려와 곤충과 동물들 없이 오롯이 혼자서만 박제된 듯 살아야 하는 식물들의 입장은 어떨까?
동물원과 식물원은 참 애매한 공간인 듯하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수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인질로 잡혀온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반대로,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직접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나름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주장 또한 나름의 일리가 있다. 요즘은 이런 문제들을 절충한 생태 동물원 혹은 생태 식물원 등이 지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 아마존의 "The Spheres"는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감탄스러운 공간임에는 틀림없지만 나에게는 전자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을 들게 하는 공간이었다. "The Spheres"에서 쉴 새 없이 감탄하며 신기해했던 나였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억지로 끌려 온 식물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뒤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씁쓸했다.
앞에서 보면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개의 공이 붙어있는 모습이다. 짜잔! 벽 전체를 뒤덮은 이곳이 green wall이다. Green wall에 설치된 식물들에게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물을 준다. 그래서인지 실내가 꽤 습하다. 4층으로 구성된 이 실내 수목원의 맨 꼭대기에는 이런 포토존이 있다. Green wall의 반대편에는 이런 곳이 있다. 발판이 흔들흔들거려서 약간의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실내에는 이렇게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구할 수 있는 cafeteria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