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생일을 맞아 와이프와 아들과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부산이라는 도시에 기대하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을테지만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은 역시 싱싱한 활어회 한접시에 소주 한잔이었다. 지난번에 부산을 방문했을 때 광안대교 근처의 수산시장에서 와이프와 함께 회를 먹었는데 기분 탓이었는지 그날의 회는 정말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그 맛을 가장 기대하며 여행길에 올랐지만모든 여행이 그렇듯,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함께 여행코스를 짜던 중에 평소 책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 와이프가 보수동 책방골목을 가 보자고 권했고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사실 지난 여행에서도 이 곳을 왔었는데 그때는 그냥 "오래된 책이 많구나" 정도만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지는 못했었다.
보수동 독립서점에서 만난 "달 사진을 보내주는 건 사랑받는 걸까"
보수동 책방 골목을 지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게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독립 출간물들만을 다루는 독립서점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책들을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심플한 표지에내가 좋아하는 얇은 책이었고내용도 길지 않아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장을 슥슥 넘겨보던 중에 한 두 문장이 훅 들어왔다. 구매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었다. 이 책 속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느낌으로만 남았던 마음들이 곳곳에 살아 있었다.무엇보다 대형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소한 책이라는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지역 독립서점에 가서 주문해도 같은 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대형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라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의 몸에 신체나이가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것처럼 나는 우리의 감정에도 나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의 감정 나이에 맞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이 책은 20대의 감정 나이로 사랑과 이별을 바라보고 있어서 마치 내가 20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처음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모습과 대담함 대신 내 감정이 상처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소극적인모습에 많이 공감했다. 대다수의 책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굉장히 세련되게 전달해 주는 느낌인 반면 이 책은 약간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욱 생생한 느낌을 준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도 이 책을 다시 펼친다면 20대의 감정을 환기시켜 줄 것 같은 책이다. 젊은 날에 느꼈던 감정들이 그리운 분들에게 이 책이 기분 좋은 향수를 선물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