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과를 졸업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질문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어봤다. 하지만 막상 내가 영어회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실망한다.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나의 영어회화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느껴진다. 그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버터발음이 아니라서일 수도 있고, 막힘없이 술술 얘기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내가 구사하는 어휘나 문법이 아주 초보적인 것이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저 이유들은 그들이 "난 이래서 영어를 못해" 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들이다. 결국, 그들은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기준으로 남의 영어실력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언어이다. 언어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일 뿐이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남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로 이 영어라는 수단의 가장 큰 목적이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이 영어의 본질적 가치이고 문법과 발음, 표현 등은 본질적 가치를 조금 더 보완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일 뿐이다.
강박관념
우리는 영어를 "글"로 배운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영어시간에 시청각 수업도 하고 말하기 수업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혹은 토익시험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영어공부의 목적은 수능 고득점을 위한 스파르타식 문법과 독해 (+약간의 듣기) 에 집중된다.이런 시험 위주의 공부는 문법과 독해에 편중된 공부를 강요하기도 함과 동시에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을 더해준다. 그러면서 수능 혹은 토익에서 얻은 점수가 곧 자신의 영어실력인 것으로 쉽게 판단해버리곤 한다. 본인 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시험성적 = 자기 실력" 이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사고방식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사람들은 내가 실제로 영어를 쓰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영어시험에서 얻은 점수가 곧 그 사람의 영어실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주변 환경은 온통 영어인데도 우리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Input & Output
우리가 이런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는 이유는 input & output 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는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고, 다른 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input 에 해당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우리에게 영어를 입력하는 input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엄청난 input 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우리도 절반쯤은 영어 전문가다. 왠만한 문장에서의 잘못된 오류를 발견해 낼 수도 있고, 어느 누가 발음을 잘못하면 그것을 잡아낼 수도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죽어라고 한 일이 바로 이 input 을 최대한 많이 쌓는 일이다.
반대로, 우리는 영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는다. Output 이 없다는 뜻이다. 죽어라고 input 만 하고 output 을 내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첫 output 은 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신의 output 을 내놓아야 스스로 자신의 output 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결과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끄러움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는 것, 영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영어라는 output 을 내놓아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output 을 이 반쯤은 영어 전문가들인 사람들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운 것이다.
호주에서의 10여 개월은 나에게 수 없는 실패의 시간이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내가 내뱉은 무수히 많은 말들 중에 문법적으로 정확한 혹은 발음이 정확한 말들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50% 도 채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긴 시간동안 호주라는 이국 땅에서 살아남았다. 내가 정확한 영어를 구사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그들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동양인들, 특히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말이 유난히 느리다. 본인이 영어를 내뱉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내뱉는 말이 문법에 맞는 내용인가? 이 상황에 이 표현이 맞는 표현인가? 발음은 어색하지 않는가? 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떤 말이든 선뜻 내뱉지 못한다. 그들은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법이나 어휘, 발음 등도 물론 영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문법이나 독해 등 높은 수준의 text 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냥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무리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 말하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잘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겠지만.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우선 내가 어디에 먼저 집중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충분한 output 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어 울렁증을 극복해야만 한다. 남들 앞에서 하기가 부끄럽다면 거울 앞에서라도 output 을 내야 한다. Input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내가 어떤 영어를 잘 하고 싶은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에 맞는 output 을 만들어 보자. 시작을 정하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우리의 영어 실력도 충분히 향상될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