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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호 Mar 28. 2022

내가 아는 천 개의 단어가 모두 파랑파랑 한 하늘이었다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고 나서 이런 감정이 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책은 읽어나가는 동안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다. 세상의 온기가 식어버린 곳에 작가가 따스한 희망을 조금씩 쌓아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는 콜리라 불리는 기수 로봇이 추락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콜리는 두 번째 낙마를 하는 중이다. 그의 낙마는 특별하다. 다른 기수 로봇들과는 다르게 그는 본인 스스로 낙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두 번의 낙마가 모두 투데이라는 경주마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제조과정에서 인간의 실수로 탄생한 독특한 로봇이다. 아직 개발 중이었던 인지와 학습능력을 넣어둔 칩이 한 연구생의 실수로 콜리에게 장착된 것이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들이 그렇듯, 콜리도 인간의 사소한 실수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눈을 뜬 콜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가 만나는 인간들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면서 그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하나씩 학습하기 시작한다. 다른 기수 로봇들이라면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정해진 과정들을 거쳐 기수가 되었겠지만 콜리는 달랐다. 마치 어린아이인 것처럼, 온갖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리는 자신의 파트너인 투데이를 만나게 된다. 콜리는 투데이가 당근과 각설탕을 먹을 때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투데이가 숨을 헐떡이는 것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투데이의 근육과 피부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콜리는 행복을 배웠고, 투데이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달리기였다. 투데이는 달릴 때 엄청난 행복을 느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기수를 만난 투데이는 점점 더 행복하게 달리기 시작했고, 경기 성적도 덩달아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였다. 투데이와 콜리의 성적이 좋아질수록 사람들은 그들에게 열광했고, 그들의 몸값이 오를수록 경마장에서는 그들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투데이에게 돌아온 건 더 많은 당근과 각설탕이 아니라 채찍이었다. 콜리는 인간이 시키는 대로 달리는 투데이의 엉덩이에 채찍질을 시작했다. 채찍을 맞은 투데이는 더욱 빠르게 달렸지만 그의 근육과 피부는 전처럼 떨리지 않았다. 투데이의 무릎은 망가졌고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느덧 투데이는 콜리의 무게도 버거워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콜리는 투데이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투데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외면당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 낙마함으로써 투데이가 실격되도록. 그래서 그가 쉴 수 있도록.

 이 낙마로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는 연재라는 고등학생에게 팔리게 된다. 연재는 로봇을 좋아하고 기계에 관심이 많은 소녀다. 연재는 콜리를 정성껏 고쳐주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었던 연재는 콜리를 고칠 수 있을만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필요한 부품들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 반에서 공부하는 지수와 로봇 경시대회에 나가게 된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 본 적도 없는 사이였다. 지수는 대학 입시에 엄청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로봇 경시대회에서 참가하여 입상을 하고 싶어 했지만, 로봇에 대해서는 영 재능이 없었다. 마침 그녀는 연재가 로봇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연재에게 로봇 경시대회에 입상하기만 한다면 지수가 원하는 모든 부품들을 가능한 대로 모두 무료로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요청해왔다. 지수의 아버지가 로봇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연재에게는 은혜라는 언니가 한 명 있다. 은혜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단지, 남들처럼 걷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은혜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은혜에게 투데이의 경기는 위로였고 안식이었다. 투데이의 성적 부진은 그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은혜에게는 투데이의 성적보다는 경기 그 자체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마협회의 입장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경주마를, 더군다나 회생의 가능성도 없는 경주마를 위해 언제까지고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협회는 투데이의 안락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은혜는 투데이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동원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다양한 세상이 안쓰러웠다. 친구가 없는 연재의 삶이 그랬고, 과부로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로 두 딸아이를 키우는 연재 엄마의 삶이 그랬고 (연재의 엄마는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배우를 그만두게 되었고, 소방관이었던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자 은혜와 연재를 홀로 키우는 가장이 되었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은혜의 삶이 그랬다. 죽을 때까지 인간들의 유흥거리로 소비되어야만 하는 투데이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안타까운 삶이 따뜻해지는 과정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절망적인 상황 그 어딘가에도 분명히 희망이 있으며, 그 작은 희망이 조금씩 모여 상황을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찾아준 희망의 온기에 나조차도 따뜻해져 버렸다.

 한편,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약간은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의 감정이 학습의 대상인가?”라는 질문이다. 소설 속의 콜리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조금씩 배워간다. 물론 그가 학습한 감정은 극히 제한적인 감정이고, 그마저도 콜리는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투데이의 헐떡거림을 통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학습했다. 감정이 학습의 대상이라면 앞으로는 나의 기쁨과, 슬픔, 우울함이나 쓸쓸함을 다른 인간이 아닌 기계가 더 잘 공감하고 이해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끊임없이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다면 콜리처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연재와 은혜, 지수는 모두 기계에게서 위안을 얻게 될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차가운 이성으로 이루어진 과학이 우리의 삶을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주제와는 달리, 독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질문을 품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만 가지의 생각과 질문을 품게 만드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도 좋은 소설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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