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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l 15. 2024

으른이 돼서 하는 셀프 성교육

솔직히 말하겠다. 난 내 몸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이 없다. 되도록이면 거울을 안 보는 편인데, 거울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서다. 몸을 가려주는 스타일의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을 오래 들인다. 바지 사러 가면 사이즈를 큰 소리로 말 못 하는 사람, 날씬해 보이는 핏의 바지만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던 결혼 전 극한 다이어트 후에도 바지 사러는 항상 혼자 갔다. 남편한테도 내 바지사이즈를 차마 알릴 수가 없어서.

난 왜 이렇게 내 몸을 부끄러워하게 됐을까. 아니, 미워하게 됐을까. 이놈의 몸뚱이, 중력을 오지게 받아서 그런지 땅으로 꺼질 것 같네 같은 생각만 하게 되었을까.


<포괄적 성교육>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는 어깨가 곧게 뻗어 있고 팔이 튼튼한 사람입니다. 실은 제 어깨와 팔을 이렇게 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내 어깨는 너무 넓고 팔뚝은 너무 굵다'는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왔지요."


이 문장을 읽고 내 얘길 써놓은 줄 알았다.

나는 내 몸을 나노 단위로 나눠서 평가한다. 애 낳은 지 5년이 지났음에도 배가 들어가지 않았고, 종아리는 단단히 알이 서서 바지를 입으면 불룩 튀어나오며, 허벅지 앞부분은 근육이 커서 너무 타이트한데 뒷벅지는 힘이 없고, 골반이 휘어서 허리가 굽었으며.... 말하자면 끝이 없다. 프로아나 신드롬에 관련된 다큐를 보면서 남 얘기 같지 않다. 20대 때 수백만 원을 들여 다이어트 한방약을 사먹으면서 식욕을 억지로 눌렀던 순간들, 많이 먹었다 싶을 때 몰려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손가락을 목에 넣어 음식물을 토해내려고 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일주일 내내 단백질 보충제 1병으로만 식사를 대체하다가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입원한 적도 있다. 그래도 아픈 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었다.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에 들기 위해 안간힘 쓰거나, 특정 모습 또는 상태를 추구하고 선망하도록 유도되거나, 어떤 불합리한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를 성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있는지도 몰랐던 내 몸속 여러 기관과 존재와 이름, 때대로 우리 몸이 정치적 공간이자 사회적 투쟁의 장이라는 사실, 기존 체제가 수용하지 못한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정상'이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서 스며들듯 받아들였던 수많은 것들이 이제는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정상 가족, 정상적인 학생, 정상적인 외모, 정상적인 관계... '정상'이란 이름은 다층성과 다양성을 폭력으로 찍어 누르는 말이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이 '정상성'이란 이름 아래서 올바른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일베나 포르노 사이트를 통해 성을 왜곡된 방식으로 받아들여 표출하는 걸 많이 봤다. 학생이 선생님 치마 밑을 거울로 비춰보려 하다 걸려도 학교에선 이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려 하기보다는 일을 덮에만 급급했다. 교내 연애는 무조건 금지였다. 학생들끼리 사귀다가 들키면 정학 처분을 받았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런 일들이 자행됐다. 작년엔 한 학생이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했다가 다른 학생들로부터 심한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전학을 간 일도 있다. 선생님들은 골칫덩이가 전학 가 준 것에 감사하는 분위기였고, 애들은 역겨워서 화장실 같이 쓰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말들을 내뱉었다. 나는 교육자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개입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아이들은 더 거센 반대 여론을 만들어 피해 학생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냥 더럽다는 거였다. 우리나라 성교육은 '나와 다름'을 독처럼 여기고 배척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근무할 때, 남자 친구랑 동거하는 학생을 교사가 알게 되거나 화장실에서 학생끼리 섹스하다 교사에게 걸리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 학교에선 부랴부랴 구색 맞추기식 성교육을 실시했는데 내용은 담했다. 여자애들이 스스로 몸 관리를 잘하고 순결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포괄적 성교육>책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을 했더니 아동/청소년이 성행위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졌고, 성행위 빈도가 줄었고, 파트너 수가 감소했고, 위험한 행동이 감소했고, 콘돔 사용이나 피임률이 증가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교육에서 선행 학습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성교육에서만큼은 학생들의 지식수준,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에 두려움과 저항감을 드러낸다." 이 문장에 너무나도 공감했다. 나조차도 교사이자 부모로서 성교육을 실행하는데 두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조차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성적으로 억압될수록 외압에 쉽게 굴종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김누리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 이론 깊이 공감했으면서도 '리스크'를 감당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를 갖지 못했다.


성교육은 사실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5~6세 여아용 장난감으로 매니큐어와 메이크업 세트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초등학생 나이 화장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아이돌이 데뷔하는 현실에서 아동/청소년의 조기 성애화가 일어나고 아동 성 착취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아동 성 착취 관련 범죄를 막는 가장 좋은 대안올바른 성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오랜 시간 실시하는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나와 사교육계에서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온 성교육 방법을 수업에 적용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성과 관련된 키워드들을 나열한 뒤 아이들이 스스로 키워드를 고르고, 내가 아는 가장 정확한 성지식-월경, 발기, 임신, 출산, 피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모 귀에 들어갔다면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수업 자체는 나와 라포 형성이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거라 어색하지 않게 흘러갔고 아이들도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낙태한 친구 이야기, 성관계할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성관계하는 아이들 이야기, 성인이 먼저 된 남자친구가 아직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어주었다. 결론은 성적 호기심과 욕망은 자연스러우며,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지었다. 서로 더 할 이야기가 많아서 단기 수업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쉬웠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다양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성교육의 장을 열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모든 걸 병리화한다. 예를 들어 연애 관련 교육을 할 때도 특정 연애를 '건강하지 못한 연애'라며 병리화한다. 어떤 관계가 정답인지 설명하고,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교과서에는 실제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거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성교육은 수박 겉핥기 식이 될 수밖에 없고 단기적이다. 정상 연애에 속하지 않는 연애를 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은 소외되고 음지로 숨게 된다. 이건 특정 성교육 강사의 문제라기보다 학교 분위기 체의 문제다. 모든 사람은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은 비슷한데 이를 다 포괄할 수 있는 성교육에 대해서 공적인 장소에서 토론하고 연구하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 적용 가능한 국가 수준의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모로서 행한 성교육은, 아직은 자식이 어려서 신체 부위의 정확한 명칭과 역할, 월경과 포궁의 관계, 내 몸과 마음을 존중하면서 타인도 존중하는 방법 정도만 설명하는 데에서 그쳤다. 자식이 자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다양' '입체' '다층적'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그 말처럼 성교육을 할 때 '관계'와 '존중'이란 측면에서, 납작하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답을 주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함께, 자 결정권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가정에서 마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이 책을 읽고 해답을 얻었다. 혐오 발언도 일종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기에 무슨 말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가 아니냐, 하는 질문을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땐 내가 대답할 말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지금은 책에 나온 대로,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는 말과 글로 얼마든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권력자들에 의해서 약자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혐오 표현이 만연해진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혐오 표현을 제지하는 것이 결국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에게 적용한 구체적인 '신체와 발달' 관련 내용도 있다. 요즘은 내 어깨가 곧아서, 그리고 널찍해서 재킷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팔뚝이 굵어서 요가할 때 팔로 하는 자세는 오래 잘 버틴다고 생각한다. 지금에서야 나는 나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플래그를 붙였다. 그 밑줄을, 플래그를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 읽을 예정이다. <포괄적 성교육>이 나의 올바른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성교육에  정답이란 없으며, 끊임없이 대화해나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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