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괴로웠던 일들이 많았던 시간 속에서 이 책이 위로를 해줬다는 걸 오늘 책 뚜껑을 다시 열어보며 깨달았다.
내 모습을 조금씩 닮은 그들이 고통을 대신 겪어줌으로써 나의 슬픔을 달래주었고 일정 부분은 무마시켜 주었고 거칠게 튀어나온 부분은 매만져주었다.
책을 내고 나면 아주아주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안하고 두려웠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이 오픈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이 읽었을 때 갈등이 일어날만한 부분이 많았다. 오탈자도 자꾸 발견돼서 부끄럽고 괴롭고 슬펐다. 잘 안 될 것 같다는 절망이 마음을 뒤덮어서,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웠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보통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누구나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순탄한 인생만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나는 보통 사람이기에 어떤 불행도 겪을 수 있다. 매 순간 행복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당연하다.
이 문장을 열 번씩 되뇌고 나서 <가슴 뛰는 소설>을 다시 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기 시작했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창피를 당하면 누구나 달리기를 잘하게 되니까.(133쪽)
뻔뻔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132쪽)
엄마가 사라지고 난 이후 그녀에게 생긴 커다란 구멍처럼 엄마에게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생겼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207쪽)
이 책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사랑'이란 대체 뭘까.
오래 생각해 봤는데 나에게 사랑은 시간이었다.
어떤 일에 시간을 쏟고, 특정 상대에게 시간을 쏟고....
시간에 아주 인색한 내가 틈을 내어 정성을 쏟는 것은 사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마음 넓은 사람을 만나면 감동하고 만다. 특히 남이 해준 요리를 받았을 때 그렇다. 재료를 다듬고 썰고 볶고 그릇에 담기기까지 소요된 시간이라는 존재가 담긴 요리를 대접받으면 상대가 가진 사랑의 넓이와 깊이에 감명받게 된다.
오늘도 정오에 하교한 아이를 돌보는 데에 오래 시간을 쏟았다. 블루베리랑 우유를 넣어 갈고, 참치 주먹밥을 만들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빌리러 도서관까지 손을 잡고 갔다.
내가 쏟는 이 시간들은 아이의 가슴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중에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이 부드럽고 따듯한 메아리에 가까운 것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