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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Jun 17. 2024

기꺼이 특권을 내려놓겠습니다

권력과 인간

그레타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특권을 누리는데 익숙해져있다면 평등이 마치 억압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며 살아간다. 전기를 쓸 수 있는 권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 병원에 갈 수 있는 권리 등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많은 영역이 사실 특권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침해받았다고 느낄 때-파업이나 시위로 인해-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한다.     


『권력과 인간』은 18세기 조선의 시대적 상황과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비화(悲話)를 사료를 통해 낱낱이 밝힌 책이다. 이 책에서는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의 분노 포인트가 여러 번 나타난다. 영조의 분노 포인트는 한 가지로 귀결되는데, 바로 그가 가진 권력에 대한 침해이다. 영조는 자신의 왕권이 침해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꺼렸다. 특히 왕권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는 아들이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은, 영조가 자신의 특권(왕권)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의지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처음부터 세자는 영조의 기대에 어긋나는 자식이었다. 영조가 바라는 자식의 모습은 자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꼼짝 않고 책을 줄줄 읽고 외는 학자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식은 부모 마음같이 자라지 않았다. 애초에 세자는 가만히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세자는 영조의 기대치를 채우려 애를 썼으나, 자랄수록 본디 자신의 성향-영조가 좋아하지 않는 미술이나 체육을 좋아하는-이 두드러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열 살 먹은 어린이가 어떻게 어려운 한자가 빼곡한 중국의 철학서에 재미를 붙일까. 제왕 교육은 중국 경전을 읽고 외우는 수업이 주인지라 지루한데다 엄격했다.

영조는 세자의 공부가 자기 마음에 차지 않으면 여러 대신 앞에서 아들을 꾸짖고 조롱했다. 어린 아들의 말꼬리를 붙잡아 궁지로 몰았다. 학문을 즐기지 않는다며 한심하게 보았다. 이런 아버지의 힐난에도 세자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누구라도 이 정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아침부터 밤까지 앉아 문제 풀이를 하고, 정답을 잘 맞추지 못하면 혼나는 학생 신분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고 3 시절, 자정 너머까지 홀로 깨어 18세기 유럽의 철학자에 대해 외우고 있을 때면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수능만 치고 나면 이런 공부에서 해방 되겠지 하는 기대가 있어 그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세자에게는 ‘끝’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영조는 81세에 죽었다-쉬지 않고 공부해야하고, 때로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여러 대신들 앞에서 시험받고, 혼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목줄이 바투 매어진 개 신세였다. 특히 영조는 사소한 실수 하나 넘어가지 않는 편집증을 가진 아버지였다. 세자는 아버지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영조의 편집증적인 성격은 아내 정성왕후의 장례 중에서도 드러난다. 정성왕후가 죽었을 때, 쓰러질 때까지 우느라 세자의 옷 매무새가 흐트러지자 영조는 옷을 단정치 못하게 입었다며 비난했다. 영조는 상황과 맥락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자기 기준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자식을 나무라는 아버지였다. 비록 영조가 출신(영조는 궁녀의 하녀에게서 태어났다) 문제로 어린 시절 학대당한 경험이 있긴 하나, 그런 트라우마를 자식에게 뒤집어씌워 결국 자식을 미치게까지 만든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아버지의 태도이다.     


세자는 엄마에게도 지지받지 못했다. 세자의 생모 선희궁의 삶도 참으로 기구했다. 놀랍게도 세자의 죽음은 생모인 선희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세자는 아버지의 편집증 때문에 점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는데, 어느날 광증이 도져 칼을 들고 영조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 일이 있었다. 왕이 있는 궁에서 아들이 칼을 빼들었다는 걸 알게 된 선희궁은 영조에게 울면서 사도세자를 처벌하라했다. 세자가 아버지를 죽일까 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선희궁의 말을 들은 영조는 지체없이 세자를 죽이러 갔다. 아들이 뒤주에 갇혀 죽을 것을 예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으나, 세손인 어린 정조라도 살리기위해 한 행동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선희궁은 아들을 죽인 어머니가 되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후 선희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본심인즉 종사와 나라, 그리고 임금을 위한 일이나 생각하면 모질고 흉하니 (…) 내가 그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나라가 보전하였을까. 내가 잘못하였나 (…) 그렇지 않다. 이 여편네의 약한 생각이지. 내가 어이 잘못하였으리오”.


선희궁은 여염집 여자가 아니라 세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아들의 안위보다 나라를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아들을 앞세운 어미의 고통을 어떻게 다 헤아릴지.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삼년상이 끝나자 곧 죽었다. 아들의 삼년상을 치를 때까지만 명을 붙들고 있을 작정이었던 듯 하다.

한미한 출신의 엄마와 권력에 집착하는 아빠 밑에서 자란 세자는 결국 엄마에게서도, 아빠에게서도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영조는 세자가 대답을 잘해도, 못해도 미워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세자를 불러 끊임없이 시험했으며, 대답 하나하나 끝까지 꼬투리를 잡아 아들의 진의를 무시하고 망신을 주고야 말았다.

하루는 영조가 세자에게 문제와 무제 중 누가 더 훌륭한가 물었다. 세자가 문제가 훌륭하다 하자, ‘날 속이지 마라. (평소 글 읽기를 싫어하고 활 쏘기만 좋아하니)너는 필시 마음속으로 무제를 통쾌히 여길 것이다’라며 아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 무안 주었다. 심지어 물음에 대답을 척척 잘 할 때에도 ‘오늘 하나 잘한 것을 가지고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은 영조와 세자가 마주한 모습을 보고, 열 살 된 아기가 아버지와 마주 앉지도 못하고 신하들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며 가슴아파했다. “어쩌다 한 번 만나면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훈계를 앞세웠고, 신하들 앞에서 글 뜻을 물어볼 때도 아기 세자가 자세히 대답할 수 없는 부분까지 추궁하여 물었다. 이것이 반복되다보니 세자는 잘 아는 것조차 겁을 내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 나중에 세자는 아버지 뵙는 일을 무슨 큰일이나 치르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중록에 기록되어 있다.      


영조는 세자의 몸매에 대해서도 조롱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 배 좀 보라, 내가 그 나이 때는 이렇지 않았다, 가마가 좁아서 세자가 탈 수도 없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세자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세자가 유일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이 음식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스트레스 받을 때, 마음이 허할 때 뭔가를 씹으면서 마음을 달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음식은 세자에게 잠시라도 기쁨과 평안을 주는 대상 아니었을까? 영조의 태도로 인해 신하들에게도 은근한 무시를 받던 세자가 어디에서도 마음 편하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세자는 그나마 자신이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음식의 기쁨을 붙잡고 있으려 했다. 육신의 허기를 채움으로써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그 결과 비대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영조도 아이를 너무 닦달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도세자만 보면 몰아세웠다. 번번이 신하들 앞에서 사도세자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사도세자 열세 살 때의 기록이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도 영조는 서릿발같이 굴었다. 세자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윤근 같은 늙은 사관은 알아듣지도 못하겠다’하고 무안부터 줬다.

방어영을 옮기는 문제에서 세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내가 얼마전에 정한 일을 어찌 그리 가볍게 바꾸냐’며 질책했다. “사도세자는 형식적으로는 권력의 일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심지어 영조는 백성들이 얼어 죽거나 주려 죽거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생겨도 소조(사도세자)에게 덕이 없어 이러하다”며 나무랐다.


영조는 세자를 늘 재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 심지어 능행 중 소나기가 쏟아지자 세자에게 크게 화를 내고 강제로 돌려보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호령을 내린 부왕 때문에 세자는 숨이 막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비난이 누적되자 사도세자는 천둥 번개에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뇌우가 칠 때마다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버지의 멸시와 조롱 때문에 세자의 병증은 점점 악화되었다. 벼락 공포증은 ‘경계증’이라는 불안장애로 깊어졌다. 세자의 불안증은 의대증으로까지 번졌다. 옷차림에 민감했던 영조 때문에 옷을 입지 못하는 강박증이 생긴 것이다. “세자는 옷을 입다가 맞지 않다 싶으면 벗어던졌고 (…) 혹시 귀신이 씌었나 해서 태우기도 했다. 옷을 한 번 입는 데 어떤 때는 열 벌, 심지어 이삼십 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 세자의 옷은 아무 옷감이나 쓸 수도 없는 데다가, 이처럼 많이 필요했으니 옷값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 사도세자는 옷을 입으려고 애쓰다가 여의치 않으면 시중드는 사람을 죽이곤 했다.” 광증으로 인한 살인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세자는 내관과 내인, 가장 아끼던 후궁을 죽였고 아내인 혜경궁에게 바둑판을 던져 눈을 심하게 상하게 했다. 게다가 내인들과 관계할 때 때려서 피가 철철 흐른 다음에라도 관계를 맺었다. 살인에 강간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책에서는 “사도세자 주위 사람들은 이렇듯 세자의 만성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세자는 제대로 미쳐가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세자는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 정신분열증이 생긴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길에 사람이 보인다며 두려워했다.      

세자는 정신병 때문에 괴로워했으나 자살조차 할 수 없었다. 차기 왕권 주자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약을 먹고 죽으려 해도, 우물에 투신하려 해도 주변 사람들 때문에 결행하지 못했다. 세자가 자살하면, 세자의 죽음을 말리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목숨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자가 죽으려고하면 주위에서 목숨을 걸고 막았다. 갖은 트라우마와 불안으로 인해 세자는 너무나도 죽고 싶었으나 목숨마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자는 일찍부터 죽고 싶었다. 아니 무서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이었다. 자살은 쉽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말리는 사람이 늘 주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자는 정말 떠나고 싶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면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자에게는 끝이란 것이 없었다. 사도세자는 스스로 떠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사람을 죽이고 강간한 것은 단연코 죄이나, 그렇게 정신을 놓을 때까지 몰아부친 것은 영조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조는 백성들에게 좋은 임금이었을지는 모르나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었다. 세자는 영조 앞에서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며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다’며 운다.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상황을 봤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동 학대를 멈추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백성들이 우러르는, 존경하고 싶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식의 박탈감, 모멸감은 말로 다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첫사랑이자 우상이었을 아버지는, 결국 자식을 미치게 만들고 죽이기까지 했다.

읽기 고통스러운 역사의 장면이다.      


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아침의 이야기는 더욱 처참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잡으러 오자, 세자는 아내 혜경궁에게 아들 정조의 겨울용 방한모자인 휘항을 가져다달라고 한다. 그가 휘항을 쓰고자 한 것엔 숨은 이유가 있었다. 학질에 걸린 척 함으로써 아버지에게 아픈 것처럼 보이려 했고, 한여름에 아들의 겨울 모자를 씀으로써 자신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려 했으며, 차차기 왕권 후보인 정조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혜경궁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손의 모자는 작을 거라고 하자, 사도세자는 ‘자네 아무래도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라 답한다. 혜경궁이 자신을 버리고 정조를 살리려 한 것으로 본 것이다.

세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동안의 행적이 부부간의 관계를 상하게 한 것이겠지만 가슴이 아프다. 사도세자의 가족 관계는 오해로 둘러싸여있었다. 한중록에 이 일화를 실음으로써 혜경궁은 “끝까지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그렸다.”

사도세자는 결국 반역죄로 뒤주에 갇힌다. 어떤 일화에서는 홍인한(혜경궁의 삼촌)이 뒤주 위에 풀까지 올려 세자를 빨리 쪄 죽이려 했다고 전해진다. 갈증을 못 견딘 세자는 부채에 오줌을 마시기까지 했다. 결국 찌는 듯한 더위와 갈증과 싸우다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조는 우발적으로 세자를 죽인 것이 아니었다. 한더위에 무려 9일이나 좁은 뒤주에 가둬놓고 서서히 죽였다. 실록에 실린 영조의 후회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세자를 죽인 데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해도 죽음의 책임에서는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적어도 군주로서 신하들 앞에서는 아비로서 괴로운 척, 불편한 척, 안타까운 척이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서 영조의 후회를 읽어야 할 것이다. (…)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다른 길을 찾지 않았을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자식을 죽인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이유를 떠올려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 권력의 속성 때문인지 개인의 성격 때문인지, 자식을 사랑하는 보통 아버지의 눈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망가뜨리고 죽인 아비에 대해 생각한다. 자식을 굶겨 더위 속에 죽어가게 한 영조의 엽기적인 행위가 현대 사회에 보도되었다면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영아를 성폭행하고 학대 살해한 아버지와 무엇이 다를까. 세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 자체도 끔찍하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불행한 자식으로서의 삶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자는 인정받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폄하했고, 말할 때마다 비웃었으며, 어떨 땐 존재 자체를 불길하다고 여겼다. 아버지에게 벌레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생을 견뎌야하는 세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조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이었다. 그는 특권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가 조선 역사에서 정치적 안정을 구현한 업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업적을 쥐고 다른 사람의, 특히 자식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됐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설사 자신이 힘을 써서 쌓았다 해도 그것을 대대손손 물려줄 권한까지는 없다. 일시적으로 위임된 권력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런데도 그런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생존까지 흔들기도 한다. 나누지 않는 권력은 외롭고 위태롭다.”     


사도세자의 폭력성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멀쩡한 사람을 살인범이 되게 키운 아비의 비정함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무시당할 때 느끼는 비참함에 대해 나도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싶은데, 그런 애정이 번번히 꺾이는 데서 생긴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회복되지 않는다. 곪은 상처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할 뿐이다. 아빠가 나를 냉정하게 뿌리치는 기억을 악몽으로 되풀이해 꾸면서.      


자식은 취약하다. 가정 내에서 피권력자다. 부모의 사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랑은 권력의 이양하는 것이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란 이름의 권력을 이양 받은 자식만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다.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다.


사랑은 권력인 동시에 생명줄이다. 사랑을 나눔으로써 부모의 생명을 자식에게 나누는 것이다. 자식은, 자기 대신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한 부모를 사랑으로써 얻는다. 세자가 여염집 자식이었다면 이런 사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세자는 작은 임금으로서 권력도, 생명도 얻을 수 없었다. 자식에게 목숨과도 같은 부모의 사랑이 세자에게는 전무했다.     


부모는 때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권력인 줄도 모르고 휘두른다. 그런 힘의 차이에서 자식은 서서히 병들게 된다. 권력자가 피권력자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들면 피권력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영조의 권력 남용 과정에서 한 인간이 망가지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본다. 진정한 권력자라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신이 권력을 올바로 쓰고 있는지 돌아봐야했다. 영조는 돌아봄을 소홀히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권력에 만취해 자식을 죽인 아비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삶을 통해 나의 부모됨을 돌아본다. 압도적인 부모의 권력을 자식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는 데 쓰고 있지는 않은지. 자식 망치는 길에 내가 앞장서고 있지는 않은지. 권력의 단 맛에 취해 자식의 의견은 납작하게 누르고 내 의견만 강하게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권력은 나눔으로써 오히려 공고해진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 나보다 약한 사람들, 나만큼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출근길 방해된다고 지하철 타려는 장애인들에게 계란을 던지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권력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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