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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워터 Mar 24. 2022

루틴과 리듬

코로나19 재택치료 행정안내센터 근무 한 달 차


월요병 뻥 차라고 우리 팀원이 준 레모나


  지난주부터 일주일이 금방 가는 기분이 듭니다. 어느새 일에 적응한 걸까요? 생각해보니 이제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5시마다 일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습니다. 오전에는 일대일로 상담원들의 상담 내용을 피드백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새로 내려왔거나 변경된 지침들을 엑셀에 보기 좋게 정리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콜센터는 여전히 아수라장입니다. 멈추지 않고 울리는 벨소리와 상담원의 고착화된 멘트들이 저의 머리를 정신없게 만드는 것도 그대로입니다. 하루 종일 착용하는 마스크 때문에 피부가 더 예민해진 것만 빼면 그래도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잠들기 전 따가운 볼때기에 진정 크림을 바르고 누우면 고민할 새도 없이 그대로 곯아떨어지거든요. 불면증이 자취를 감춘 걸 보니 저는 불면증 환자였던 게 아니라 그냥 체력이 남아돌아서 생각 회로를 멈추지 못하는 한가한 인간이었던 모양입니다.

  휴무만 기다리는 삶은 어쩐지 너무 불행한 것 같아 저만의 사소한 일상 루틴을 만드려 애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쉽지 않네요. 제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한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침 운동이요. 어릴 부터 서서는 짝다리를 짚고, 앉아서는 다리를 두 번 꼬는 습관이 있는 저는 좌우가 틀어진 골반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신체 부위의 오른쪽이 더 길고 얇고 작아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도수치료를 받았을 때도 도수치료사가 그랬습니다. 한눈에 봐도 양쪽이 다르다고.


  1회 8만 원인 도수치료 비용을 충당할 능력도 없고 통증도 심해서 어쩔 수 없이 골반 교정 운동을 시작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체가 중요하다고 해서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내전근과 중둔근 운동도 병행했는데, 두 달 정도 했을까요?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이전보다 다리도 덜 붓고 무릎과 발목 통증도 확실히 괜찮아졌었죠. 그때 멈추지 말았어야 했는데... 몸이 제법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됐는저는 하루하루 운동을 미뤘고 그 이후 방탕한 몇 달을 더 지나왔습니다. 지금의 몸은 어쩐지 운동하기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네요. 다시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4일 차입니다. 다리에 엄청난 탄력이 붙은 듯한 이 느낌도 허상이겠죠? 이번엔 속지 않겠습니다. 출근 전 저만의 40분을 갖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어떤 탄성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은 참 좋네요.

  더 욕심을 내자면, 저녁 글쓰기 루틴을 만들고 싶습니다. 7시에 일이 끝나면 집 대신 카페로 가 두 시간 정도 글을 쓰는 거예요.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엔 책을 읽고요. 소설 공부할 돈을 모으겠다고 1년 휴학한 사람이 그 1년을 정말 돈 버는 데만 쓸 수는 없잖아요? 휴무인 수, 목요일에는 이미 늘어질 것을 염려해 각각 소설 창작 강의와 작업 모임을 오전 시간에 배치해두었어요. 토요일에는 격주로 독서모임과 창작 모임에 참석하고 있고요. 이쯤 되면 누군가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직도 충족이 안 됩니다.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건 어찌 됐든 글을 읽고 쓰는 일이니까요. 콜센터 일은 어차피 2개월 후면 끝날 일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루틴을 몸에 익혀놓아야 다른 일을 시작하더라도 저만의 리듬대로 변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주 나약한 인간입니다. 돈을 안 내고는 혼자서 뭘 못 해요. 소액이라도 무조건 돈을 걸고 저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나마 집중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29살에 문창과를 들어간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드넓은 우주에서 나 혼자 이렇게 허튼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태평양까지 가는 저로서는, 이게 허튼짓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다 같이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위안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녁 글쓰기 모임 같은 걸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모임장 역할 이런 거 너무 부담스러운데 아쉬운 사람이 시작해야지 뭐 별수 있겠어요? 조만간 좋아하는 공간에서 사람을 모아보겠다고 설치고 있을 제가 상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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