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 2021 최고의 드라마
구경이(jtbc)는 내가 2021년에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다. 비슷비슷한 드라마 사이에서, 구경이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달까. 이제부터 구경이의 매력을 샅샅이 파헤쳐 보겠다!
감독 : 이정흠
작가 : 성초이
사실...구경이를 보고 감독님과 작가님들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 극본과 연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가 본격적으로 해 보기로 하고, 다음은 출연진이다.
이영애 배우님, 김혜준 배우님 주연의 드라마다. 구경이는 장르가 하드보일드 코믹 추적극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구경이'라는 탐정이 살인마 '케이'를 추적해가는 드라마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기존의 추적 드라마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구경이는 총 12부작이다. 아무래도 추적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중간부터 보면 이해하기가 좀 어렵고, 처음부터 봐야 후반부에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1화부터 7화까지는 시청자에게 구경이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느낌이었다. 8화부터 12화까지는 사건이 시원하게 쭉쭉 전개되는 느낌이고. 그래서 재미적인 부분만 따지면, 8화부터 12화가 재미있었다.
하드보일드 추적극이라는 장르 소개답게 극 전체에서 과도한 감정을 배제한다. 케이의 이모가 죽었을 때도, 여타 드라마라면 슬프게 묘사했을 텐데, 구경이는 그렇지 않았다. 케이가 악한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잔인하거나 스릴있게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장난스럽게 보여 준다. 이로써 나타나는 효과는, 시청자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면서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드보일드 장르는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장르라고 느껴졌다. '나쁜 놈을 직접 처치한다는 생각은 악당 영화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생각이다'라는 문제의식을 하드보일드 장르를 사용해 명확히 전달했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구경이는 연극적인 요소를 많이 차용했다. 실제로 케이가 연극부원이기도 하고, 연극적인 연출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에 극본 관련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영화는 관객에게 '떠 먹여' 주는 매체이고, 연극은 관객과 '토론을 하는' 매체라고 설명해 주신적이 있다. 영화가 감독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연극은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구경이가 서사를 명확하게 풀지 않고, 각종 맥거핀을 설치해 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참여하기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
구경이 :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보스 캐릭터만 봐 오다가 구경이처럼 이상한 보스 보니까 너무 재밌다. (구경이가 경수 놀리는 거 보면 왠지 기분 좋다...)
케이 : 소녀의 얼굴을 가진 살인자. 소녀의 얼굴을 한 신. 결국은 감방에 가는 살인마. 여러 가지가 섞여 아직은 잘 모르겠는 캐릭터다.
산타 : 시청자들은 산타의 존재를 가장 궁금해했다.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구경이의 남편과는 어떤 관계인지. 하지만 드라마는 산타에 관해서 그 무엇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산타의 정체는 맥거핀일 뿐.
경욱 : 게이 설정으로 케이와의 이성애 차단하고, 경욱의 동성애를 낭만화하거나 타자화하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은 캐릭터.
구경이는 대본이 정말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창의적이어서! 이걸 어떻게 연출할까,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능력자는 이걸 해 낸다. 그것도 엄청 잘... 연출과 편집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너무 퀄리티 있고...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연출 장면 두 개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9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구경이는 빌런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오크통에 갇혀 죽을 위기에 놓인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저유조 한가운데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누가 구경이를 구해 준 걸까?
드라마는 저 두 장면 사이에 게임 화면을 넣는다.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서 죽을 뻔한 위기에 놓은 구경이를 꿀벌이(!) 구해준다. 사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이해 안 되는데 게임 화면을 이용하여 재치 있게 설명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부가 요소를 넣지 않고,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참 천재 같은 연출이었다...
또 좋았던 장면은 구경이가 저유조에서 나제희의 환상을 보는 장면이었다. 마치 연극에서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주인공 앞에 스포트라이트가 타-악! 켜지면서 주인공에게 힘을 주는 인물이 나타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사람 죽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난 그게 없었어. 멍청함과 오만함.
누굴 죽이겠다는 마음 품고 사는 거 그거 진짜 못할 짓이거든요.
난 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 상관이 없단다. 중요한 건 니가 있어야 우리가 게임에서 이긴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