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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공학도 Feb 24. 2024

[그때그곡] KTX에서 듣는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0. 시도 때도 없이 아까 봤던 승차표를 다시 확인하며 플랫폼 앞에서 KTX 기차를 기다린다.

'12호차 10D, 12호차 10D...'

곧 내 머릿속에서 휘발될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모두 약간씩 상기되어 있는 듯하다.

이미 옆에 타 계신 승객과 눈짓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는다. 서늘했던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온기가 찬 객실 내로 들어오니 몸이 후덥지근했다. 신경 쓰였던 기차소리에 귀가 어느새 적응하며 잠시 고요가 찾아온다. 그렇게 몇 분을 달리다 보니 승무원께서 머릿수를 세며 표를 검수하며 지나가신다. 문득 '몇 년 전만 해도 객실 내에서 맥주랑 바나나 우유도 팔았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1.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처음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때론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중간고사를 끝내고 한 주 동안의 휴가(?) 비슷한 것이 내게 주어졌을 때, 나는 다시 고향으로 가는 KTX에 올랐다. 밤 기차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덜컹덜컹. 맥주와 바나나 우유를 싣고 내 옆을 승무원분께서 여러 번을 지나가셨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맥주 한 캔을 시킬까.., 말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맥주 한 캔 주문하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그때는 이 맥주 한 캔을 시켜 놓고 책을 읽는 것이 짐짓 어른(?)의 행동이라 무의식적으로 느껴졌다. 뭐랄까 지금 맥주 한 캔을 시켜 놓고 책을 읽으면 앞으로 내가 돌아가지 못할 어떤 다리 하나를 불태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맥주 한 캔을 시켰고 내 손으로 직접 그 다리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나는 책을 덮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창문을 바라봤다. 터널을 지나는 창문 속엔 바깥 풍경 대신 나와 객실 내 풍경이 비쳤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순 없기에, 특정 순간에 각자의 방식으로 책갈피를 끼워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책갈피이다. 나는 KTX에 타면 나도 모르게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때 맥주를 시킬까 말까 고민하던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당시 좋아하던 동아리 선배의 얼굴, 그래서 간지러웠던 내 마음과 그때 했던 고민까지도.


#2. 오랜만에 후배의 결혼식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조금은 서툴던 열정과 꿈을 함께 공유하던 친구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제와 생각은 그때와 많이 달랐다. 몇몇 친구들은 이제 어디를 떠나 어떤 것들을 이루고 이런 것보다는 어떤 사람과 어떤 추억을 만들어갈지가 더 중요해졌다. 꿈은 더 구체적이었고 더 새로웠으며, 조금은 더 손에 잡힐 어딘가에 있어 보였다. 조금은 더 여유로워 보였고,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 보였다. 올라오는 KTX에선 평소 듣던 노랫말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기차가 터널에 진입한 순간, 그래서 전에 보였던 바깥 풍경이 창문에 비친 내 모습으로 바뀌는 그 순간. 나는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가야 할까. 짐짓 진지해졌다. 이 기차가 떠난 그곳에 혹시 홀로 남진 않을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3. KTX를 타고 오랜만에 정든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그 때의 건물과 분위기는 그때 그대로였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제 이 학교를 떠나 없었고. 그제야 나는 많은 것들이 변화했음을 실감했다. 그때 이곳에 있던 우리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이야기는 어디로 간 걸까? 이제 같은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려올 때, 이제는 각자 다른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내 친구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졌다. 그러고보면 내가 대학생활을 그리 나쁘게 하지는 않았나 보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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