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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국 Dec 31. 2023

나만 결혼식이 하기 싫어?

결혼식 날짜를 잡다 4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헤어지기까지 하는 커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게 내 얘기가 될 뻔했다.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주는 웨딩플래너님 덕분에 막연했던 나의 결혼식은 구체화가 되어갔는데, 

결혼식 준비에 협조적으로 변한 것 같았던 남자친구의 투정이 시작됐다.

불만의 이유는 결혼식 없이 결혼생활을 하고 싶고,

결혼식이 너무너무 하기 싫다는 것.


남자친구의 말에 너무나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 결혼식이 하기 싫다는 뜻인가 하는 왜곡된 생각도 들었다. 

나도 결혼식을 하기는 싫지만 축복받는 우리 둘의 새 출발을 위해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에 남자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갔다.

자식의 결혼식을 인생의 가장 큰 과제로 갖고 계신 엄마를 생각해서인지, 아님 사실은 나도 결혼식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건지… 남자 친구의 강한 거부에 결혼식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갑자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나는 결혼식을 꼭 하고 싶다기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결혼식을 해야만 하는 거지? 

스스로 생각해 보다가 답을 못 내리겠을 땐, 책임을 전가하듯 남자친구에게 울면서 화를 내는 순간도 많았다.


행복하고 축하받아야 할 결혼 생활의 시작을 꼭 이렇게 괴롭게 만들어야만 할까?


남자친구가 결혼식에 거부감을 드러낼 때마다, 나도 결혼식이 하기는 싫지만 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가 그 정도로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싫다고 말을 했다. 이미 남자친구도 내가 결혼식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의 그런 말에 냉담했다. 

남자친구는 결혼식을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었다. 둘 다 결혼식이 하기 싫은데 남들의 시선과 이목 때문에 꼭 그렇게 결혼식을 해야겠냐고, 혼인 신고만 하고 그냥 살면 되지 않냐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어떤 게 내 마음인지 혼란스러워서 더욱 감정이 격해졌다.

내가 이렇게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다니.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남자친구의 말에 섭섭할 때마다, ‘그렇게 결혼식이 싫으면 나는 해야겠으니까, 너는 결혼식이 필요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낫지 않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심한 경우에는 헤어지자고 말하기도 했다.


글로 써보니 짧은 일화처럼 느껴지지만, 결혼식 준비기간 동안 남자친구와 대화하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몇 시간을 길을 잃고 지옥 속에 있는 순간이 많았다.

내 생각이 정확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남자친구가 어떨 땐 이해가 되면서도 가끔은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관계를 다시 생각할 정도로 큰 싸움이 있었다. 예식장인 ‘아모르하우스’ 방문 예약 날이었다.

준비도 늦어지고 왠지 불안 불안했다. 거리가 있어서 일찍 가서 미리 주변에서 구경을 하든 저녁을 먹든 하려고 했는데, 출발이 늦어져서 저녁 식사할 시간이 부족했다. 갑자기 남자친구가 배가 고프다며 나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지, 예식장 방문이 중요한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사실 여러 가지를 섬세하게 신경 쓰고 양보하는 남자친구가 유일하게 자유롭게 마음껏 선택하고 결정하는 게 먹는 것이었기에, 마음이 쓰였다. 왜냐하면 남자친구의 입장에선 하기 싫은 걸 하기 위해 자신이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도 모자란 세상인데, 그걸 못하게 하는 주체가 사랑하는 나라니…


하지만 나도 이런 남자친구 마음에 공감하고 남자친구를 잘 달랬고, 남자친구도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해 주면서 차에서 햄버거를 포장해서 먹으면서 가기로 결정하고 기분을 풀었다.


그렇게 방문한 예식장은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우리 커플은 둘 다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잘 받고,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데 예식장이 외국 영화에서 본 듯한 하우스 파티 형식의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새롭고 기분 좋은 예쁜 장소였다. 주차가 조금 불편할 거 같고, 화장실이 남녀 각각 하나씩만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낭만이 넘쳤다.

웨딩하우스 대표님의 말씀을 두 손 모아 열심히 듣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결혼식을 하려면 여기로 결정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의 결혼식으로 좋은 날로 받아온 날짜들을 보다가, 딱 들어맞는 예약 가능 날짜가 있어서 바로 예약을 했다.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나오면서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 남자 친구 기분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내가 말을 배려하면서 세심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어느 부분에서 남자친구의 기분 나빴는지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자신은 결혼식장을 예약한 지금도 결혼식이 하기 싫은 마음은 계속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결혼식이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기대도 되지만, 예식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본인을 무시하듯이 말해서 결혼식이 싫다는 감정이 다시 생겨났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음에 드는 예식장에 기분이 잠깐 괜찮아졌다가 다시 나한테 변덕과 투정을 부린 거였다.


나도 남자친구를 다독이고 그랬냐며 이해한다고, 근데 생각보다 재밌을 수 있고, 큰 경험과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고, 큰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이 문제로 싸웠다. 그러다 싸우는 도중에 말하면서 자꾸 내 팔을 잡는 남자친구의 손짓이 내가 필요하다는 마음을 느끼게 했다. 그거에 마음이 약해졌고, 나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진짜로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 나오는 말을 여과 없이 주저리주저리 하다 보니, 감정이 조금 해소되어 풀려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번엔 관계에 불안을 표현하고 못난 말들을 뱉어내면서 해소를 했다면, 다음번엔 조금 더 남자친구를 이해하고 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큰 싸움을 하긴 했지만 결정된 결혼 날짜는 5월 18일.


초반에 싸우면서라도 서로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익혀가는 게 나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서로에게 맞추다가 불만을 마음속에 쌓아두면 관계는 더욱 악화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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