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월요일

에필로그

by 봄에 핀 코스모스

그게 4호선이었는지 6호선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2010년 여름 어느 금요일 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배와 나란히 지하철 막차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선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졸고 있었다. 지하철이 정거장에 도착하거나 정거장을 출발할 때마다 선배의 몸이 잔잔한 파도처럼 내게로 밀려왔다 밀려갔다. 몇 안 되는 승객은 선배처럼 졸고 있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눈을 감고 깊은 바닷속 수초처럼 조용히 흔들거리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의미 없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상념들에 마음을 맡긴 채 방심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뒤에 몰래 수건을 놓고 간 것이다. 깜짝 놀란 내 마음은 수건을 집어 들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졸고 있던 선배를 흔들어 깨웠다.

“왜?”

무의식 중에 내릴 역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선배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려 했다.

“형,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은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채 중얼거렸다.

“계속 출근하고 퇴근하고 가끔 누군가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그렇게.”

“그게 어때서?”

나는 갑자기 좀 겁이 난다고 말했다. 마치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로 내달리고 있는 기분이라고.

“야, 그런 건 중년이나 돼야 하는 생각이야. 아직 멀었으니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인마. 참, 내릴 때 꼭 깨워줘.


그날 이후로도 나는 가끔씩 특별한 이유도 없이 쓸쓸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오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주말에는 농구를 하거나 흘러간 영화를 보고, 가끔 가까운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삶. 평화로운 주말 오후처럼 흠잡을 데 없는 삶.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것이었나.

처음에는 몇 달에 한 번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생각을 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마치 목표물에 가까워질수록 신호가 빨라지는 레이더처럼. 막연하게나마 나는 자신이 어떤 변화에 다가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제이를 만나게 되었다. 인사동 어느 카페에서 처음 만난 제이는 맞은편에 앉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저렇게 웃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어쩌면 오늘 하루로 끝나버리는 인연은 아닐까.

“좀 걸을래요?”

제이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들과 씨름하던 나를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산책은 시작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매일 저녁마다 제이와 동네를 산책했다. 지난 5년 동안 제이와 함께 걸으면서 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곤 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평소 산책을 다니는 코스를 찾아 길이를 재어보니 총 2.4km였다. 그렇다면 지난 5년 동안 제이와 나는 어림잡아 4,300km가 넘는 거리를 함께 걸어온 셈이다. 5년 전에 서울을 출발했다고 한다면 지금쯤은 중국을 지나 카자흐스탄 근처 어딘가를 걷고 있지 않을까.

매일 저녁 설렁설렁 동네 한 바퀴를 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산책인데 벌써 이만큼이나 걸어왔다. 지구의 둘레는 46,000km 정도 된다고 하니 머지않아 우리 부부는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에 월급을 받으면 운동화를 새로 장만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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