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광걸 May 08. 2020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가는 양극화 시대에 ‘헬조선’은 마력을 지닌 말이다. 지옥 경험을 하게하는 대학입시제도, 각종 스펙쌓기 후에 밀려오는 허탈감, 대학졸업후 실업자로서 떠밀려난 공허함은 ‘헬조선’이라는 코로나급 바이러스가 급속히 배양하는 숙주가 되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대학입시를 준비 중이던 학생이 지금은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자본논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들은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내몰려왔다

동유럽 어느 시골 도시에도 볼 수 있는 LG 에어콘

 베이비붐 시대에 개발현장에서 청춘을 불사른 또다른 젊은이들, 이제 50,60대인 이들을 조직은 ‘씹다 버린 껌’처럼 대하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계약직으로 내몰린 20,30세대도 일회용으로 대접받기는 매일반이다. 특히 한국사회가 품고 가기에 베이붐 세대는 이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나 보다. 사오정, 오륙도를 넘어 면벽근무를 강요하는 사회풍토가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부정해야 하는, 가치관의 혼동을 강요받고 있다. 정치권 일부는 젊은 층을 내세워 세대 갈등을 심화한다.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한국사회는 일종의 사회적 아노미(anomie) 상태를 겪고 있다. 공통의 가치가 무너진 무규범 상태에서 불안감, 상실감, 무력감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근래 해외이민이 부쩍 늘었다.     

 대한민국을 낳은 어머니는 누구인가? 눈에 보이는 유형적 어머니가 아니라, 무형적 DNA를 전해준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로 신음하던 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중국 대륙으로 건너갔다. 당시 정치적 난민(refugee) 신세였던 독립군은 중국 국민당 군대에 자원봉사 형식으로 입대했다. 1940년대 독립군들은 왜 자신들을 ‘자원봉사’라고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국내 단체의 지원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구국행동이 국내 독립활동을 하는 여러 단체에 일제의 혹독한 탄압이 가중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3.1혁명으로 이어졌다. 100여년전 물리적 힘만이 국제사회의 정의를 규정하던 시기에 비폭력 운동을 전개했다. 


 3.1혁명을 준비했던 선열들은 일본의 가혹한 헌병통치의 현실을 직시하고 ‘만세운동’으로 인해 발생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했다. 선열들의 고심은 ‘비폭력’ 정신으로 모아졌고, 비폭력 만세운동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당시 식민지의 독립운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꺼져가던 약소민족 공동체의 촛불을 되살렸다. 3.1 혁명을 준비했던 핵심요인들은 그 자리에서 감옥행을 자처했다. 이들의 통찰력과 가이없는 희생정신은 휘발성이 높은 인스턴트식 사고로는 헤아릴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선각자들의 애국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대한민국을 낳게 한 것은 다름아닌 민족 생명 공동체에 대한 희생정신과 보편적 인간애다.     

중경 임시정부 기념관에 비치된 1920년대 봉사단, 독립군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준 것은 유엔연합(U.N.)이다. 지구상에서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은 아이러니하게도 5년 후인 1950년 6ㆍ25 한국전쟁을 계기로 유엔군을 창설하고 참전하였다. 유엔의 기치 아래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등 5대양 6대주를 대표한 16개 국가에서 6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성인으로 인정해준 유엔은 2007년 자신의 수장인 사무총장으로 한국인을 선출했었다.      

 대한민국은 개도국에 희망이자,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모델이다. 자신들과 같은 딱한 처지에서 출발해 짧은 기간 내에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일궈냈고 이제는 문화강국으로 성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초청되어온 코이카 연수생들은 한국이 자기네처럼 식민지 고통을 경험했고, 유엔을 통해 독립했다는 점에서 연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은 1940,50년대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의 삶은 변한 게 별로 없었다. 여전히 대대로 이어가는 가난과 억압적인 체제는 지붕이 내려앉은 허름한 집마냥 불안하고 절망뿐이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못했던 한국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 아프리카는 풍부한 자원이 있는 빈국(貧國)인 까닭에 한국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중남미에서 온 연수생은 자국의 도로정비, 전자정부, 가성비 좋은 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얀마 연수생은 한국의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며 인기배우들의 사진이 인쇄된 브로마이드를 한가득 사고 있었다. 그중에는 한국 드라마에 현지어 자막을 입혀 문맹율을 떨어뜨린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공무원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마주친 한글

 우리에겐 부끄러운 자화상도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고속 압축성장의 이면에 크고 작은 재난이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등은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성급함과 기본을 경시하는 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론’에서 현대사회의 각종 재난적 상황은 바로 근대화에 그 원인이 있다며, 성찰적 근대화를 주창했다. 근대화의 기초인 합리성을 ‘사회적 합리성’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구분하고, ‘사회적 합리성’이 결여한 ‘과학적 합리성’은 맹목적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그간 과학적 합리성과 효율성에 과도히 편향되었던 까닭에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경시했었다. 

 베트남, 필리핀, 그리고 남태평양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에는 라이따이한, 코피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한국인의 자손들이 있다. 전쟁 중에 혹은 해외 건설로 파견나갔다가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를 뒤돌아 보지 않고 귀국하였다. 한때 급속한 소득증대로 해외여행이 유행할 때 ‘어글리 코리안’으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태를 보인 적도 있다. 과도한 자신감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의 결과는 소위 ‘샘물 교회’사건으로 나타났다. 전세계는 유투브를 통해 알려진 한국인 젊은이의 희생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교회의 일반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이슬람 지역에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는 발상 자체가 사실 무모한 것이다. 남녀간 차이를 엄별하고, 여성의 경우 얼굴조차 가리도록 하는 전통적인 문화와 관념을 무시하고 맨발의 슬러퍼를 끌고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치안이 담보되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녔으니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곧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우리 방문자의 책임이다. 외국에서 운전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발이고, 눈과 귀가 된다. 외국에서 운전하는 것도 위험하고 운전수를 고용하면 그들의 집에 선물을 들고 가보는 것이 신변에 좋다. 만일을 대비하여 집도 알아놓고 인간적으로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부터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지구촌(서아프리카 해변)

 파푸아뉴기니에 있을 때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강도사건이 간혹있었다. 돈을 노리는 범죄였지만, 자신의 신분 노출을 두려워하여 살인까지 이어지곤 했다. 우리 한 젊은이의 일화다. 현지에 있은지 몇 년 되어갈 즈음이었다고 한다. 포트모르스비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는데, 잠시 정신을 파는 사이 차는 어느 샛길로 빠지고 있었다고 한다. 눈치를 채고는 얼른 금속성의 만년필을 총이라고 위협하며 운전수의 목에 대고 택시를 후진시켜 위험지역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호텔로 바로 갔는지 경찰서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치안상황과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항상하고 다녔기에 그와 같은 기지를 발휘해 어려움을 벗어난 것이다. 

 국제화를 거대한 담론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해외 여행을 갈 때 문화와 생각이 다른 곳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국가 공동체에 재난적 상황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간혹 필리핀 등 동남아로 황혼이민을 간 분들의 불행한 소식을 접할 때면 아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내부 세계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가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와 공감하고 유대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문화와 어우러진 나눔의 원조사업

 베트남의 박항서 축구감독은 베트남 축구계의 전설이 되었고, 한국의 이미지과 국격을 한껏 높였다. 우리와의 역사적인 아픈 과거를 치유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지구촌 이웃은 자신들의 꿈을 이뤄낸 대한민국에 기대와 꿈을 갖고, 대한민국이 내미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LPGA를 휩쓰는 한국 여성 골퍼들, 류현진의 피칭, 손흥민의 축구, 김연아의 피겨스키이팅 등은 스포츠의 발전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문화 예술의 격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됐다. 영화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것을 증명해 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지구적 재난을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면서 다가오는 4차혁명의 파고를 맞아 인류사회가 지켜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왕조시대를 거쳐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건국된 이래 역동적인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거대한 조류와 신자유주의의 변화 속에서 적지않은 기회와 희생이 뒤따랐음을 깨달아야 한다. 과도한 경쟁의식은 공동체 의식을 해치고, 분열을 야기했다. 앞으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배려, 공감에 기초한 사회적 합리성이 과학적 합리성과 균형을 이룰 때 한국은 새롭게 비상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면서 수시로 한국을 아프리카의 개발 모델로 역설했다. “내 아버지가 케냐에서 미국 유학을 왔을 때 케냐의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높았다. 오늘날 한국은 크게 발전했고 부유한 나라가 됐지만 케냐는 아직 가난의 질곡과 싸우고 있다. 왜 그런것인가? 아프리카 국가도 한국처럼 투명성과 책임감, 효율성을 길러야 한다.” 우리도 이제 오바마와 같은 젊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정부패의 원류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