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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Oct 04. 2019

독일 와인 여행 7

모젤에서 라인가우로

5일 차


눈 뜨자마자 포도밭이 보이니 와인 산지에 머무르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런데 벌써 모젤을 떠날 때가 되었다. 이제 모젤 강변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라인 강변으로 가는 것이었다.


모젤의 포도밭



모젤 강변에서 라인 강변으로 이동하는 경로



뤼데스하임Rüdesheim


고속도로에서 1시간 넘게 달리다 빠져나와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강변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착장으로 가라는 게 아닌가! 구글맵도 마찬가지였다. 지도가 미쳐서 우릴 물에 빠트리려나 의심하다가 대안이 없어서 시키는 대로 가봤다. 차들이 페리에 진입하려고 줄을 서서 뱃삯을 내고 있었다. 뤼데스하임 마을에 들어가려면 제주도에서 우도 들어갈 때처럼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차에서 내리지는 않아도 되어서 다른 차들 뒤에 줄을 서서 페리로 들어갔다. 다른 방향에서 들어가면 육지로도 갈 수 있는 것도 같았지만 그 상황에서는 페리가 유일한 옵션이었다.


게오르그 브루어 와이너리

뤼데스하임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와이너리로 갔다. 가을 햇볕에 익어가는 포도를 보나 했더니 한여름 날씨였다. 원래는 걸어서 포도밭까지 올라가는 일정이었으나 우리는 못 걷는다고 떼를 써서 뤼데스하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바로 케이블카를 탔다.


게오르그 브루어 와이너리 입구



케이블카에서 라인 강과 라인가우 포도밭 구경


정상에서 본 포도밭
타우누스 자락에 있는 숲은 겨울 바람을 막아준다

언덕의 정상은 타우누스 산맥의 남서쪽 꼭대기였다. 독일은 상징하는 게르마니아 상은 1871년 보불전쟁 전쟁 후 독일 제국이 건립된 것을 기념해서 세워졌다. 경사가 급한 포도밭은 햇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서 더 잘 익은 포도, 그리고 더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 라인 강은 햇빛을 반사하고 추위를 누그러뜨리는 작용을 해서 위도가 높고 기온이 낮은 지역인데도 포도가 잘 익는 편이다. 이 지점에서 라인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강의 북쪽에 있는 와인 산지는 남향이다.


리슬링과 피노 누아


새들이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가림막을 친 포도밭

잘 익은 피노 누아가 많지 않았지만 몇 알 얻어먹어보니 새콤달콤하고 진하고, 식용 포도보다 훨씬 강렬한 맛이었다. 포도밭에서 실컷 걸어보고, 포도나무와 경작 방식에 대해 마음껏 물어보고, 포도도 먹어보고... 와인 마시기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포도의 생장주기를 접하는 재미에 얼굴 타는 줄도 몰랐다.


포도밭에서 돌아와서 저장고로


지하 저장고 입구
스파클링 제조용 퓌피트르/예술 작품 라벨
라인강 북쪽에 있는 브루어 포도밭의 입지가 표시된 벽면 그래픽




포도밭이 아무리 좋아도 땡볕에서 걷는데 지쳤던 참이라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서늘한 지하 저장고로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시원한 데다가 와인이 가득한 공간이라니! 칠링이 잘 된 피노 누아 로제를 맛보며 더위를 식혔다. 양조장은 100미터 정도 떨어진 다른 건물에 있었지만 저장고 안에는 라인가우 와인과 포도밭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니 박물관도 있었다. 1980년부터 시작된 예술가 후원 프로그램에 따라 해마다 슐로스베르크 와인병의 라벨에 작품이 실렸다.  


게오르그 브루어 와이너리는 리슬링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시음과 투어 예약이 편리하다. 시음은 10유로 내외로 가능하며 포도밭과 셀러 투어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된다.

http://www.georg-breuer.com/



가이젠하임Geisenheim

라인가우 음악제Rheingau Music Festival

저녁에는 근처 요하니스베르크 성에서 저녁을 먹고 성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서는 서둘러 꽃단장을 했다.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제 중 하나인 라인가우 음악제는 요하니스베르크 성, 폴라츠 성, 에버바흐 수도원 등 라인가우 지역의 역사적인 건물에서 열린다. 세계적인 연주자, 오케스트라, 그리고 신예 연주자들이 참여하며 입장료도 싼 편이다. 우리가 모젤에 있었던 29일에 언니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회가 있었는데, 비스바덴의 콘서트홀까지 갈 시간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도 포기했었다. 우리의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미국 출신 연주자 키트 암스트롱의 피아노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요하니스베르크 성 주차장


요하니스베르크 리슬링 트로켄과 살구버섯을 곁들인 오리고기 테린
살구버섯 철이라 메인도 살구버섯




요하니스베르크 성 또한 라인가우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였기 때문에 와인 고르기는 무척 쉬웠다. 리스트에서 가장 좋은 드라이 리슬링도 40유로가 안 되었다. 말이 성이지 호화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도밭이 보일 듯 말듯한 테라스 테이블에서 현지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깨끗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다 갖추었지만 고급스럽거나 사치스러운 면은 전혀 없었다. 그것 또한 좋았다. 군더더기 없는 식도락, 얼마나 합리적인가!



1992년생 신동 Kit Armstrong


서울에서 음악회를 예매하고 요하니스베르크 성 안에 있는 식당도 예약했다.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저녁을 먹고, 콘서트홀 앞에서 젝트 한 잔을 또 사 마시고 William Byrd의 소품들, 리스트의 소나타, 슈베르트의 환상곡을 들었던 느긋한 순간이었다.


https://www.rheingau-musik-festival.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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