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작자 May 08. 2023

두 번째 면담

흔들렸던 날에

삼일절이 지난  월요일은 마치 목요일 같았다

이틀 전 화요일에  매니저가 두 번째 면담을 제안했다

이번 주 중  마침 회사를 나가려던 날이라 알겠다고 했다

아웃룩 일정에는  "Discussion"이라고 되어 있었다


아침에는 좀처럼 텐션을 올리기 힘든  오전10시는 유리한 시간은 아니었다.

아침으로는 요거트에 그래놀라와 블루베리를 넣고 약간의 아가베 시럽은 넣고 먹었다. 입에 뭔가를 집어넣으면 혀를 통해 뇌가 조금은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회사까지는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걷는 시간을 포함해 약 45분이 걸린다.

운이 좋아 열차 타이밍이  맞는 날은 조금 더 빨리 도착하기도 한다.


회사는 18층에 있는터라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회사 문옆 통유리로  건물들이 턱턱 시야를 가린 거리가 멀리까지 보인다. 출입카드를 찍고  회사를 들어가 자리로 걸어간다. 아마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난 애써 창문 쪽을 보고 걷는다.  최대한 조용히 자리에 앉으면 아침에 먹은 요거트 기운은 사그라진 듯 허하다. 아주 높은 곳에 앉아 있지만 내 마음은 지하 삼사층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입에 넣어주면 일층으로는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씻어온 체리가 든 봉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매니저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말했다.

"완전히 결정한 거야?"

나는 지난 1차 면담 후 일요일에 퇴사 notice 메일을 보냈다.

퇴사를 결정하였으니 인수인계(Handover)를 위해 일정 조율을 요청하는 내용과 퇴사일 fix를 위해 두 가지 옵션을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4월로 미리 예약해 둔 괌여행 티켓을 취소하기는 싫어서 옵션 중 하나는 휴가 없이 4월 10일까지 일하는 것 다른 하나는 4월 11일부터 14일까지 휴가를 쓰고 4월 21일까지 일하는 이었다.


지난번 면담과 비슷한 패턴의 말들이었다.

아깝지 않느

근거: 3월 말의 incentive와 merit increase 안내가 있다

CRA로는 언제든 갈 수 있지 않냐고

근거: 경력 CRA는 언제나 모집공고가 떠있다

지금이 개시모임 준비하고 있어서 많이 힘든 거 같다  

피크는 지나가지 않느냐

맡고있는 과제 조정도 가능하다

그래서 뭐가 제일 나가고 싶은 이유지....?



그날은 되지 못한 잠시 객관적인 주체가 되어본다.

만일 내 친한 지인이 이런 경우라면 난 뭐라고 말했을까?

"야 아깝긴 하다 너 작년에 입사한 지 2달 만에 새 연구 개시하고  또 개시하고 좀 있다  인수인계받은 과제 2달 만에 내부점검(audit) 받느냐고 일 많이 했잖아. 주말에도 나오고 외근 가서도 야근하고 그 돈은 받고 옮기지 그래."

"그리고 지금 나가면 입사할 때 받은 사인 온 보너스도 나갈 때 못 채운 개월수만큼 토해내야 하잖아. 작년에 급여가 7% 이상은 오른 사람이 있다니까 한번 기다려 보자."

"풀재택은 아니어도 한 달에 8개 추가로 1년에 10개 재택근무 할 수 있고 사실 너 집에서만 일하는 거 네 체질 아닌 거 같은데."


그날은 내뱉지 못한 속내는 아마 이러했으리라 본다.


"응 그건 그런데  그래도 기본급이 높은 게 좋다고 하더라고

퇴직금 정산이나 연차비 정산 할 때, 그리고 나 한번 큰 CRO(임상시험 수탁기관)에서 일해보고 싶어. 솔직히 아직도 부러워. 외근 가서 모니터링실 가면 큰 회사 CRA들이 전화할 때 OOO에 누구라고 하는 소리, 바인더에 적힌 회사이름, 모니터링실 입구에 적힌 예약자 회사명, 아직도 쳐다보게 돼. 이러면 가는 게 맞는 거잖아. 한번 가 볼게. 기회가 온 거니까. 가볼 거야."



그날 아침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며 그녀의 방을 나왔다.

이전 01화 회사를 나오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